"회장님. 화를 내리십시요. 여기서 기맥이 뒤틀리면 모두 허사가 됩니다."
박부장이 말했다.
회장의 일그러졌던 근육이 천천히 주저앉았다. 작은 노인으로 다시 변한 나회장이 힘겹게 부장에게 말했다.
"직원들의 임금을 삭감하도록. 저성과자부터 내보네."
"존명."
박부장이 대답하였다.
회장의 숨이 이내 잠잠하였다.
이때.
룸 밖에서 귀를 대고 모든 일을 엿 듣는 자가 있었으니.
그는 장수의 사형 조평이었다.
*
무림촌을 떠나던 날 조평은 뒤를 보지 않았다. 살구꽃이 잔잔히 떨어지던 밤이었다. 명월은 조평을, 장수는 명월을 보고 있었다. 무림촌을 떠나던 날 조평은 뒤를 보지 않았다. 살구꽃이 잔잔히 떨어지던 밤이었다. 조평은 부러 살구꽃을 즈려 밟았다.
*
다음날 사내는 난리가 났다.
_ 전 직원 임금 30% 삭감. 저성과자 우선 퇴출. 불문곡직.
"30%? 이게 무슨 말인가. 우리 직원들은 죽으란 말인가."
"이건 해고나 다름 없어. 대륭이 우릴 버리는거라고!"
한편에서는.
"저성과자라는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건 그냥 윗사람들 기분에 따라 자르겠다는거야!"
다른 한편에서는.
"대륭의 버러지들. 이번 기회에 싹 엎어버려야 해. 썩은 물은 흘려보내야 고기가 살 수 있는 거라고."
대륭의 공기는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구내 식당에서도. 화장실 칸막이 너머에서도. 대륭인들은 숨을 죽이며 동료의 동태를 확인했다. 까딱하는 순간 동료의 칼이 내 목에 들이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얏. 내 칼을 받아랏!"
어제는 영업1팀의 김대리가 영업3팀 정대리에게 칼을 던졌다. 정대리는 김대리의 칼에 맞고 숨졌다. 김대리는 친가와 처가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그는 애가 셋 달린 가장이었다. 정대리는 1팀의 나와바리를 호시탐탐 노리던 중이었다.
_ 반탄강기(反彈罡氣)
디자인 1팀은 마케팅 3팀의 요구에 협조하지 않았다. 마케팅 3팀의 실패가 자신들이 살아남는 데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이유였다.
_ 흡성대법(吸星大法)
해외사업부 김실장이 부하직원들의 공을 모두 가로챘다. 평소 '자식 같은 팀원들'이라 부르던 이들의 기획안을 자신의 이름으로 둔갑시켰다. 기를 빨린 실무자들의 안색은 하앻지만, 김 실장의 고과는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_ 골육상잔(骨肉相殘)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같은 부서 내 같은 직급에서 더 저열했다. 어제의 동료가 적이되고 어제의 사수가 경쟁자가 되었다. 피 튀기는 경쟁 속에 이혼술(移魂術), 이형환위(移形換位), 전음입밀(傳音入密) 같은 사내정치가 난무했다. 누군가 메신저 속에서 죽었고 누군가 회식자리 뒤편에서 버려졌다. 대륭은 더욱 끔찍한 곳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헉헉. 아래는 그야말로 생지옥이야. 문을 단단히 걸어잠궈. 언제 그들이 쳐들어올지 몰라."
오팀장이 급하게 사무실 문을 닫으며 말했다.
그의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복도 너머에서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오팀장이 귀를 막았다.
"오늘부터 밤을 새워야겠어. 어떤 이들이 이곳을 무자비하게 들이닥쳐 우리 성과를 앗아갈지 몰라."
오팀장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의 눈은 초점을 잃고 사무실 문 틈을 주시하고 있었다. 피가 문 틈 사이로 뿌려져 오팀장의 얼굴에 끼얹어졌다. 오팀장이 눈을 감았다. 정체불명의 직원이 문을 끄는 소리가 났다. 피가흘러 문 아래 사무실로 스몄다.
정미인이 오팀장의 옆으로 등을 문에 기대며 말했다.
"팀장님. 박부장님이 부르셨어요. 지금 당장 박부장님께 다녀오셔야해요."
"아씨. 지금 어떻게 나가? 나보고 죽으란 소리야?"
"몰라요. 박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단 말이에요. 안나가시면 우리가 다 죽는다고요!"
정미인이 매몰차게 답했다.
"자기 정말 이러기야. 정차장. 자기가 대신 갔다와. 나 방금 갔다 왔잖아."
"무슨 소리세요 팀장님. 팀장이면 팀장답게 행동하셔야죠. 후진사업부 3팀 대표는 팀장님이시잖아요!"
"아씨 어쩌지. 나 지금 나가면 못 돌아올 수도 있는데. 정차장. 한번만 봐줘. 내 꼭 사례할게."
"지금 이 판국에 누가 누굴 봐줘요! 당장 다녀오세요. 우리 성과 다 말아먹을 작정이세요?"
오팀장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철컥."
누군가 거칠게 사무실 문고리를 잡아당기는 소리가 울렸다.
오팀장과 정미인이 문을 밀고 버티자 문이 철컥거리더니 이내 발자국 소리가 쿵쿵 멀어졌다.
"팀장님. 어서요."
정미인이 오팀장을 독촉하였다.
"어서!"
정미인이 닥달하였다.
오팀장이 고개를 숙이고 빈 머리를 긁었다.
오팀장의 안경이 뿌애졌다.
"... 그래... 그럼... 갔다올게..."
오팀장이 각오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팀장이 엉덩이를 털고 문을 열려는 순간 내가 말했다.
"팀장님.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래도 부장님이 찾는건 저인것 같습니다."
나는 문을 젖혔다.
한 걸음.
문지방을 넘는 순간.
왜 오팀장이 그토록 밖에 나가길 꺼려했는지 알 수 있었다.
식령귀(食靈鬼)가 양 옆에 나를 덮쳤다.
배경화면은 다케히코 이노우에님의 배가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