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한번 믿어보겠어. 단. 자기가 말한 양명. 조평. 승광. 이 사람들 얼굴을 직접 봐야겠어. 그 이후에 자기를 용서할지 안할지를 결정하지."
피가 솟았다.
"소소야. 아빠 거즈 가져다 드려라."
명월이 말을 멈췄다.
세상이.
나를 완전히 속인 것은 아니었다.
*
나회장의 사후. 대륭은 혼란에 쌓였다. 이사회는 즉각 장로들을 소집했고 정파와 사파에선 각기 이사들을 파견했다. 차기 대륭의 회장을 뽑는 일이 급물살을 탔다. 정파와 사파는 각기 자신들이 낸 후보가 당선되는 데에 총력을 다했다. 직원들은 패가 갈렸고 대륭의 미래는 더욱 알 수 없게 되었다.
*
"김부장. 네가 정녕 무림맹의 신의를 버리고 사파를 선택하려 하느냐."
"정부장. 가진 자의 욕심은 끝도 없구려. 이제 대륭은. 사도련주와 함께 새평등의 시대로 나갈 것이네."
출근길에 김부장님과 정부장님이 옥신각신하였다.
"부장님 안녕하세요."
"김부장."
"정부장"
둘이 칼을 들고 싸웠다.
왜 저러시지?
"김대리."
"박대리."
"너와 내가 한 때 한 곳에서 태어났거늘. 더는 같은 하늘을 뫼실 수가 없구나."
"내 칼을 받아랏!"
"이얏!"
김대리와 박대리도 싸우고 있었다. 사내에서 사이 좋기로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였는데. 왜 저러지?
"과장님."
"주임님."
"정녕 사도연합을 지지하시겠다면. 그렇게 하셔요."
"흑."
"허나 가시는 길에 소녀의 마음 즈려 밟고 가시와요. 과장님 안 계신 곳에 소녀의 마음 남을 곳이 없습니다."
"김주임..."
김주임이랑 성과장님이랑 싸웠나? 왜 저러지?
"요새 젊은 것들. 어른을 공경할 줄을 몰라."
"누가 아니래요. 우리가 어떻게 지켜온 대륭인데."
"이러다 우리 대륭이 사파놈들에게 먹히겠어."
"그건 안되죠. 천마산업이 쳐들어오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구!"
부장님들이 국기를 손에 들고 운집해있었다. 나는 길을 피했다.
"틀딱들. 해먹을 만큼 해먹었으면 이제 퇴직들이나 하시지. 천년만년 무림맹이 무림을 지배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옳습니다. 수십년 무림맹이 무림을 지배해왔으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 궐기하여 더불어 사는 대륭을 만들어갑시다!"
사원들과 인턴들이 다른 곳에 모여있었다. 나는 그들을 피했다.
"여권 신장!"
"남권 보호!"
"적폐청산!"
"귀족노조!"
"내로남불!"
"독재타도!"
"선선장!"
"후분배!"
"노인복지!"
"청년실업!"
"영남패권!"
"호남소외!"
"이스라엘 만세!"
"프리 팔레스타인!"
"트럼프 만세!"
"오바마 만세!"
"야 이 백제놈들아!"
"야 이 신라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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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헉. 왜 이러죠. 간신히 출근했어요. 과장님 이게 무슨 일이죠?"
내가 주과장에게 물었다.
"권력의 공백이지. 강자지존으로 유지되던 회사가 순식간에 파벌싸움의 장으로 변했어. 이대로라면 대륭이 위험해!"
"이 일을 어쩌죠? 과장님?"
그때 오팀장이 문을 닫고 들어섰다.
"큰일이야. 영남 신라파가 이스라엘 전사단을 공격했어!"
"예? 영남 신라파라면 옆 팀 박과장님이 소속된 그곳이요?"
"그래. 지금 이스라엘 전사단에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어."
정미인이 문을 닫고 들어섰다.
"큰일이에요. 강남 3구 연합이 지금 재건축 추진위원회와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 전면 봉쇄에 들어갔어요. 간신히 올라왔어요. 헉. 헉."
"엘리베이터 봉쇄? 그럼 지금 로비는 조합원들이 점령했다는 건가? 아씨 나는 청약도 안 눠놨는데."
오팀장이 탄식했다.
그때. 탕비실의 뒤에서
거구의 사내가 몸을 드러내며 말했다.
"이제 네가 나설 때가 된 것 같구나."
그가 나의 민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승광 사숙이었다.
배경화면은 다케히코 이노우에님의 배가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정치적인 표현이 있어 불쾌하신 분이 있다면 사과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