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지지하지 않는 당! 입니다!"
선거송이 일수 멈추었다.
나는 외치었다.
"나는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당'의
기호 3번.
무사 이장수이올씨다!"
*
"아니 장수씨. 후보 등록만 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쩌자는거야? 나가서 피켓이라도 흔들어야지. 너무 맥놓고 있는 것 아니야?"
정미인 차장이었다.
"맞아. 장수대리. 국민의 무림맹, 더불어 사도연합 둘 다 막강한 뒤를 가지고 있다고. 이렇게 아무것도 안해선 전혀 승산이 없어."
오팀장이 말을 거들었다.
"저는 따로 아무것도 안해요. 출마에 의미가 있는 거에요. 뭔가를 하면 오히려 더 망해요."
내가 심드렁 그들에게 대답했다.
모니터의 커서가 깜빡였다.
"아놔. 이거 자길 뽑아달라는 거야 뽑지 말아달라는 거야. 무림맹이랑 사도연합으로 들어간 자금 장부라도 가져가서 기자들한테 뿌리라고. 이럴꺼면 왜 출마했어?"
오팀장이 닥달했다.
"저는 그런 거 안해요. 그냥 가만히 있다가 선거 끝나는 거나 볼래요."
"장수씨 잘하는 칼싸움이라도 유권자들 앞에서 하든가. 장수씨 그거 하난 잘 하잖아. 칼싸움."
정미인이 말했다.
"싫어요. 안해요."
단호하게 내가 대답했다. 나는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 보았다.
선거일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대륭의 로비와 복도, 사무실과 입출구의 벽에는 무림맹과 사도연합의 화려한 선거 공략과 후보자들의 거대한 포스터로 도배되었다.
_ 나쁜 혁신보다 착한 안정을. 정통의 힘, 양명!
_ 심판해야 바뀝니다. 사도가 여는 새로운 공정 시대, 조평!
형님들의 얼굴이 포스터에 들어가 있었다.
포스터에서 뵌 형님들의 얼굴은 어딘가 조금씩 어색해 보였다.
나의 선거 공보물은 오직 탕비실 게시판 구석에 A4 용지 한 장으로 붙어 있을 뿐이었다.
_ 기호 3번 이장수 :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 아무도 지지하지 마십시오.
"장수 대리, 진짜 저게 공약이야? 미쳤어?"
오팀장이 뒷목을 잡으며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묵묵 대답하지 않았다.
승광 사숙이 말씀하셨다.
민머리주의란 어느 것에도 억지로 의도를 갖지 않는 것이라고.
"장수야. 머리를 밀면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모든 것을 치우침 없이 느끼게 된다. 무엇을 잡으려 손을 뻗는 순간. 너는 바람의 결을 놓치게 되는 것이야."
사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어떠한 의지도 어떠한 의도도 갖지 않기 위해서.
"장수 대리. 진짜 투표날까지 출근만 할 거야? 남들은 아침마다 정문에서 90도로 인사하는데!"
오팀장이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인사는 평소에 잘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나는 무심하게 마우스를 클릭했다.
나를 지지하지 마라. 당신의 소중한 표를 누구에게도 맡기지 마라.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순간. 파란색과 빨간색의 풍선은 그저 가스에 찬 비닐 주머니에 불과해질 것이니.
"저 퇴근하겠습니다."
나는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건물 아래층에는 여전히 선거 로고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복도로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와의 거리가 천천히 좁혀들었다.
"오랜만이구나 장수."
조평 형님이 말씀하셨다. 형님을 마지막으로 뵌지. 무려 십 수 년만의 일이었다.
배경화면은 다케히코 이노우에님의 배가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