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는 평소에 잘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나는 무심하게 마우스를 클릭했다.
나를 지지하지 마라. 당신의 소중한 표를 누구에게도 맡기지 마라.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순간. 파란색과 빨간색의 풍선은 그저 가스에 찬 비닐 주머니에 불과해질 것이니.
"저 퇴근하겠습니다."
나는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건물 아래층에는 여전히 선거 로고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복도로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와의 거리가 천천히 좁혀들었다.
"오랜만이구나 장수."
조평 형님이 말씀하셨다. 형님을 마지막으로 뵌지. 무려 십 수 년만의 일이었다.
*
장수에게 칼 쥐는 법을 처음 가르쳐 준 이는 조평이었다.
"너 이리 와 보겠느냐."
조평의 칼은 그의 웃음처럼 반듯하면서 조용했었다.
싱긋.
나무를 하러가는 장수를 불러세워 조평이 칼 쥐는 법을 알려줬었다.
처음 칼 쥐는 법을 알려준다던 조평에게 장수는 극구 거부했었다.
"싫어요. 싫구만요."
"왜 싫은 것이냐?"
"칼은 남을 죽일 때 쓰는 것 이잖아요. 저는 남을 죽이고 싶지 않아요."
"이것은 역날검이다. 이것으론 사람을 해하지 않아."
"역날검이어도 사람을 해하는 것은 다르지 않구만요."
장수는 조평의 역날검 쥐는 것 조차 거부했었다.
붕.
역날검 대신 쥐여준 지겟대에서 조평의 것과 같은 소리가 났었다.
"벨 마음없이 베었구나."
장수의 칼을 보고 조평이 말했었다.
싱긋.
조평의 얼굴에 걸린 웃음을 보고 장수도 따라 웃었다. 장수는 그 웃음을 좋아했었다. 싱긋.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웃음은 어딘가 쓸쓸한 구석이 있었다.
*
"사형!"
내가 외쳤다.
"사형!"
연달아 나의 입이 형님을 외쳤다.
"사형."
내가 형님의 앞에 섰다.
형님이 나를 보았다.
싱긋.
예의 그 웃음으로 형님이 나를 받아주셨다.
"형님!"
눈물이 터졌다.
"형님!"
싱긋.
천진하지만 어딘가 슬픈 미소. 형님의 미소는 그대로였다.
"몰라보겠구나. 세월이 많이 흘렀어."
형님의 눈이 웃었다.
나는 형님을 바라보았다.
형님...
"형님. 어찌 그간 연락이 한번 없으셨습니까. 저는 애가 탔습니다."
내가 말했다.
"번사가 괴로워 너에게 연락을 주지 못했구나. 사형의 탓이다."
형님이 말씀하셨다.
형님...
형님께서도 스승님의 소식을 알고 계시겠지.
무림촌과 함께 스승님이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시지 못한 것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나는 형님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양명 형님은 근래에 뵙고 인사를 드렸다. 여전하시더구나."
형님이 말씀하셨다.
"예. 양명 형님은 여전하십니다. 힘도 호탕함도. 형님들께서 떠나시고 스승님께서 형님들을 많이 그리워하셨습니다. 말씀은 없으셨지만..."
그림자가 형님의 얼굴에 드리웠다.
형님이 말씀하지 않으셨다.
곧 형님이 쓸쓸히 말을 댔다.
"... 사형들의 탓이다... 네가 고생이 많았구나."
형님의 눈이 깊었다. 그의 눈이 너무도 깊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명월이는 잘 지내고?"
간신히 얼굴을 웃으며 형님이 물었다. 그의 웃음이 슬프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예. 다만 기억을 잃어. 형님과 무림촌에 대한 것을 모두 기억하지 못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래. 차라리. 그것이 나은 것일 지도. 모르겠구나."
달처럼 형님이 말했다.
나는 그 대답이 달과 같이 간신히 하늘에 걸려있다는 것을 알았다. 달은 가늘게. 얕은 하늘에 걸려 있었다.
"형님은 잘 지내십니까?"
내가 물었다.
싱긋.
형님이 웃었다.
"잘 지내다마다. 대륭의 이사라는 감투도 쓰고 이렇듯 번듯한 옷도 입고 있지 않느냐. 무림촌의 흙먼지 속에서 칼질이나 하던 때에 비하면 출세도 이런 출세가 없지."
형님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하지만 그 담담함이 나는 오히려 슬펐다. 나는 형님을 슬프게 보았다.
형님과 나는 말하지 않았다.
_ 기호 1번 기호 1번 양명. 양명.
_ 조평과 함께. 사도와 함께. 김사인이, 조평과 함께 합니다!
선거송의 소음이 벽을 타고 울렸다.
나와 형님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벨 마음 없이 베었더구나."
문득 형님이 말씀하셨다.
"예? 형님?"
"벨 마음 없이 베었더구나."
형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너의 포스터를 보고 느꼈다. 벨 마음 없이 베었다는 것."
형님이 말씀하셨다.
"앞으로도 너의 믿는 것을 향해 나아가거라."
형님이 그 말을 끝으로 나의 어깨를 짧게 쥐었다 놓았다. 형님 말의 뜻을 묻기도 전에 형님은 앞으로 걸어나갔다.
형님.
나는 형님을 속으로 불렀다.
_ 기호 2번 기호 2번 조평. 조평.
벨 수 없는 것들이 사방에 가득한 듯 하였다.
나는 다시 형님을 부르지 못했다.
배경화면은 다케히코 이노우에님의 배가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