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마음 없이 베었더구나."
문득 형님이 말씀하셨다.
"예? 형님?"
"벨 마음 없이 베었더구나."
형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너의 포스터를 보고 느꼈다. 벨 마음 없이 베었다는 것."
형님이 말씀하셨다.
"앞으로도 너의 믿는 것을 향해 나아가거라."
형님이 그 말을 끝으로 나의 어깨를 짧게 쥐었다 놓았다. 형님 말의 뜻을 묻기도 전에 형님은 앞으로 걸어나갔다.
형님.
나는 형님을 속으로 불렀다.
_ 기호 2번 기호 2번 조평. 조평.
벨 수 없는 것들이 사방에 가득한 듯 하였다.
나는 다시 형님을 부르지 못했다.
*
라디오를 튼다.
노래가 흘러나온다.
헤드셋을 댄다.
노래가 시작된다.
♫
I am a passenger
And I ride, and I ride
I ride through the city's backsides
I see the stars come out of the sky
Yeah, they're bright in a hollow sky
You know it looks so good tonight
I am the passenger
I stay under glass
I look through my window so bright
I see the stars come out tonight
I see the bright and hollow sky
Over the city's ripped back sky
And everything looks good tonight
Singin'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
*
"과장님 안녕하세요."
주과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오팀장도 오늘은 표정이 좋지 않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컴퓨터를 켰다.
[긴급] 지난 밤. 무림맹 산하 영남파가 사도연합 거점인 호남지부를 급습. 현재 양측 지지자 수백 명이 로비에 대치 중이니 전 직원께서는 로비 통행을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장수 대리 봤어?"
화면의 붉은 글자가 점멸하였다.
"이거 진짜 전쟁이야."
오팀장이 낮은 목소리로 다가와 속삭였다.
"영남파에서 종교인들과 해병대 전우회 복장을 한 노인들까지 불러 모았대. 사도연합에선 여성연대와 대학생 연합군까지 집결시켰다는군. 이거 큰일이야. 일이 크게 터지려 하고 있어."
정미인이 옆에서 벌벌 떨며 종이컵을 손으로 쥐었다.
"이건 선거가 아니라 내전 같아요. 로비 한쪽에선 군가가 울리고 다른 한쪽에선 스크럼을 짜고 있어요. 이러다 누가 정말 죽기라도 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말없이 모니터 하단을 내려보았다.
모니터 하단에 새로운 팝업창이 하나 떠 있었다.
[공지] 기호 3번 이장수 후보님. 지금 즉시 양측 후보 간의 중재를 위한 '후보자 긴급 토론회' 에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장소는 본관 로비 중앙 무대입니다.
"와... 장수 대리 이거 봐. 선관위가 대리를 불렀어."
오팀장이 경악하며 내 어깨 너머로 모니터를 보았다.
"양쪽이 하도 치열하니까 아예 계파색 없는 기호 3번을 가운데 세워서 완충지대로 쓰겠다는 거네. 이건 중재가 아니라 제물로 바쳐지는 거야!"
나는 마우스 휠을 천천히 돌렸다.
"장수씨 정말 갈 거예요? 지금 무림맹과 사도연합의 지지율이 각각 49.9%에요. 대리님을 지지하는 세력은 거의 없다구요!"
정미인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말했다.
"가야지요. 여기 0.2%. 아직 응답하지 않은 사람들이 남아있다면요."
"0.2%? 그건 그냥 없는 숫자나 마찬가지야."
오팀장이 말했다.
"아니요.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양측의 분노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 의미없는 전쟁을 혐오하는 사람들. 50대 50이라는 숫자에 현혹되지 않는 사람들. 정권을 잡는 것보다 점심 메뉴로 뭘 먹을지와 퇴근 후 아이 숙제를 걱정하는 사람들. 저는 그 사람들을 믿습니다."
사무실 문을 밀고 나는 나왔다.
로비로 내려가는 길.
깃발과 확성기의 소음이 창창했다.
나는 혼란 속으로
걸음을 디뎠다.
배경화면은 다케히코 이노우에님의 배가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중간에 나오는 노래 가사는 이기팝님의 passenger 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