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

16화

by 빈자루

마교가 무림을 일통 하려는 방식은, 무림인들이 흔히 떠올리는 천일마대제(天一魔大帝)나 천마신공(天魔神功) 같은 구체적 인물이나 무급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강자지존이라는 힘의 논리를 내세웠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노린 것은 구체적 승패가 아닌, 무림인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처음 발명한 것은 돈이었다.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마교가 사린국으로부터 들여온 배화교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들이 서역 땅에서 자장투스트라의 교리를 들여온 것은 사실이나, 그들이 서역 땅에서 들여온 것 중 무림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 와인과 포도주였다.


마교가 사린국과 왕래하던 초창기, 그들의 교역품은 불과 향의 연기를 담는 제기, 그리고 교리가 담긴 서책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것이 심심풀이로 무림에서 가져온 청주를 사린국인들의 포도주와 바꿔 먹으면서, 서로가 서로의 술을 미치도록 좋아한다는 사실을 간파하였다. 그들이 교역상품은 비단, 백자, 인삼 혹은 향수, 후추, 유리 세공품과 같은 고급 물건들로 바뀌어 갔다.


교리의 전파나 친목 도모는 이제 허울일 뿐, 이젠 더 많은 물건을 들여와 더 비싼 가격에 파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 되었다. 양국에서 양국의 물건은 미친듯이 팔려나갔다. 마교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고, 수많은 상단들을 휘하에 두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큰 짐을 들고 가, 그것을 다시 큰 짐으로 바꾸고, 또 바뀐 짐을 여러 날에 걸쳐 옮겨 오고 하는 일이 그들에게는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들은 서역과 무림에서 동시에 통용될 수 있는 화폐 시스템을 우선 갖추기로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교역로의 독점을 통해 마교는 서역과 동양의 부를 싸그리 긁어모았다. 그 과정에서 자장투스트라의 교리 전파를 자신들의 표면적 명분으로 위장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들은 돈을 쓸어담았다. 그리고 더 많은 돈을 뿌렸다. 그들이 돈을 뿌리면 뿌릴수록 그들이 구축한 화폐 시스템은 더욱 공고해졌다.


그 시스템 속에 무림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잃고 있는지 각성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이 잃고 있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의와 협이었다. 점차 그들은 칼 보다도 돈을 더 두려워하게 되었다. 돈이 없다는 사실에 당장 아사라도 당할 것 처럼 떨었고, 상대에게 돈이 있다는 사실에 그의 말에 복종하게 되었다. 그들의 뇌는 그렇게 화폐 시스템에 장악되어 갔다.


무림인들은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마교의 논리를 받아들였다. 강자지존. 강자들은 더 많은 부를 축적했고, 약자들은 그 밑에서 조금의 부라도 쌓기 위해 노동으로 몸을 팔았다. 더 빠르게, 더 크게, 더 많이. 강자들은 약자들을 지배했다. 약자들은 그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자본은 이제 그들에게 그들의 강과 약을 측단 할 수 있는 우선적인 지표가 되었다.


강자들이 효율을 추구하면 할수록, 부는 점점 더 한 곳으로 쏠렸다. 한번 쏠리기 시작한 불균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이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가져왔다. 공급은 과도했지만, 그것을 소비할 무림인들은 적었다. 마교는 자신들의 화폐 시스템이 한계에 달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정파와 사파를 부추겨 전쟁을 일으켰다. 그것이 1차 정사대전의 시작이었다. 많은 무림인들이 피를 흘리며 전쟁터에서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 전쟁의 끝에 승리한 자는 오로지 마교뿐이었다. 정파와 사파는 마교에 막대한 빚을 지게 되었다.


무림의 권력은 마교의 손에 떨어졌다. 무림맹과 사파를 실제로 지배하는 것은 마교였다. 선 성장 후 분배냐, 후 성장 선 분배냐를 놓고 이들은 밤새도록 입씨름을 했지만 실상 이들이 관심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 뿐이었다. 밤낮없는 이들의 입씨름에 양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져갔다.


1차 정사대전을 겪은 후 마교는, 지나친 강자지존의 논리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지면 결국 자신들도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논리를 교묘하게 바꾸었다.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논리 대신, 누구나 강자가 될 수 있다는 ‘자기계발’의 신념을 무림에 퍼뜨렸다.


'생생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미라클 모닝으로 갓생', '꿈, 꾀, 끼, 깡, 꾼, 성공하는 사람들의 5가지 비결'.

무림인들은 이제 잠도 자지 않고 자기계발을 위해 열을 올렸다. 어떤 이들은 잠도 자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자신이 바라는 미래에 대해 생생히 상상하기만 했다. 자신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오롯이 자신이 노오력하지 않아서 이라고, 꿈과 꾀와 끼와 깡이 없어서이기 때문이라고 자신을 깎아 내리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마교가 퍼뜨린 캐치프레이즈로 무림에는 많은 피해가 속출했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슬로건으로 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관계를 단순 종속 관계로 치환.


'여러분, 부우자 되세요'라는 슬로건을 통해 부자가 되면 막연히 행복질 것이라는 인식을 뇌리에 각인.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통해 돈 받고 일하는 게 최고, 아마추어는 능력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아, 라며 아마추어리즘의 미적 가치를 훼손.


'흙수저', '금수저' 등으로 인간의 계급을 이등분.


'꼬이직', '누칼협', '알빠노' 등의 신조어로 극한 이기심 조장.


보이지 않는 손은 개뿔. 무림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되었다. 무림인들은 쉽게 쟁했고 쉽게 분노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무엇에 지배당하고 있는지 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가진 자들은 못 가진 자들의 못가졌음을 단순 게으름, 나태, 열정없음 등으로 치환했고,


못 가진 자들은 가진 자들의 가졌음을 동경하면서도 그들의 공감능력 없음, 배려심 없음, 양보하는 마음 없음에 분노했다.


그들이 서로에 대한 분노를 키우면 키울 수록 더욱 공고해져 가는 것은 마교의 지배 논리였다. 정파와 사파의 우두머리들은 분노한 이들을 더욱 둘로 나누고,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는 데에만 급급했다.


아무도,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마교 체제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비난하는데에만 바빴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무림인이라는 사실 조차 잊게 되었다.


이제 무림을 기억하는 이는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되었다.


오직, 소설가 이장수씨 만을 제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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