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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보자 Feb 07. 2023

집을 나왔다

이혼 소송은 처음이라1

집을 나왔다. 결혼하고 4년 8개월 만에 내 집에서 내가 나오게 된 것이다. 집이 누구 명의인지 차가 누구 것인지 따질 여유가 없었다. 당장 나가야만 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출근할 때 입을 옷과 속옷, 양말만 챙겨 나왔다. 내가 봐도 너무 간소했다. 뭔가를 더 챙겨야 될 것 같은데 뭐부터 챙겨야 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만 있으면 일상생활은 어찌어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을 나오고 앞으로 나 혼자 살 집으로 갔으면 좋았으련만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갈 곳이 부모님 집 밖에 없었다. 이미 아들의 순탄치 않음 결혼 생활을 너무나도 잘 아시는 두 분이라 자연스레 내가 돌아가도 놀라시지는 않겠지만 소박한 짐만 챙겨 돌아온 내 모습은 부모님의 마음 한 곳을 다시 한번 아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부모님께 긴 말 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주말에 회사 근처에 방을 알아보고, 이 주 안으로 나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다른 곳 가지 말고 여기 있으라고 하셨지만 내가 거절했다.


‘뭘 잘했다고 여기서 살아. 매일 부모님 눈에 띄어서 괜히 맘 아프게 할 일이 있어.’




집을 나올 때 그 사람과의 관계는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싸움이 격해져서 경찰까지 출동했다. 그 사람은 언제나처럼 화가 나면 소리를 질렀다. 그런 모습을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창피하다’였다. 그때부터 상대방의 포효 속에 담겨있는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번 싸움도 온 동네가 다 알겠구나.’


그 때 내가 살던 집은 리모델링을 했지만 20년이 넘은 아파트여서 방음이 훌륭한 편은 아니었다. 난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고 기분을 표출하는 그 사람을 대신하여 윗집, 아랫집, 앞집까지 신경 쓰기 시작했다. 


‘당분간 사람들 좀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그 사람과 더 이상 이야기가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마주하고 싶지 않아 서재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와장창’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니 싱크대 상판에 놓여 있던 선반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그 안에 담겨 있던 접시들은 여러 조각으로 깨져있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가능하면 싸우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자 아이 엄마라는 자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었다. 하지만 물건까지 던지는 폭력성의 발현을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언성이 높아지고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속에 있는 말을 꺼냈다. 누구도 물러서지 않고 모진 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을 때 손 끝의 날카로움이 한쪽 볼을 스쳤다. 그리고 나를 잡고 있던 마지막 끈도 끊어졌다.


“제발, 그만 좀 해!”


다시 한번 나를 향해 손을 뻗는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어깨를 세게 밀쳤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벽에 부딪혔다. 솔직히 내 손에 감정이 실렸다. 


“너, 이거 폭력이야. 경찰에 신고할 거야.”


깨진 그릇들이 주방 바닥에 널려진 것도 그 사람 행동의 결과이고, 내 얼굴에 붉은 선들이 그어진 것도 그 사람 손짓의 결과이건만, 단 한 번 밀쳤다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는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악에 받친 채로 본인의 억울함에 대해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할 수 만 있다면 이 사람을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었다. 다시 생각해도 섬뜩할 정도의 감정이었다. 만약 문 밖에 아이들이 없었다면 이후의 사건들이 어떻게 전개됐을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이성의 끈을 추스르고 거실로 나가 아이들을 달랬다.


잠시 후 신고를 받은 경찰들이 와서 집 안 상황을 보고 각각의 진술을 듣고 돌아갔다. 그 사람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고, 나 홀로 집에 있었다. 




애초에 신뢰는 없어진 상태였다. 결혼하고 4년 반이란 시간 동안 거짓말에 속고 다시 믿었고 마지막까지 속았다.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까지 농락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계를 모르고 밀려오는 스트레스와 자존감을 바닥 끝까지 떨어뜨리는 절망감은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미주신경성 실신’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고 받아보는 진단이었다. 극심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긴장으로 의식을 잃는 증상이라고 한다. 


그 사람의 실체를 알게 되고 한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집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난 바닥에 누워져 있었다. 옆에는 놀란 그 사람이 날 흔들고 있었다. 


‘문을 열었는데 왜 내가 바닥에 눞여져 있지’


중간이 기억나질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라며 걱정 가득한 며칠을 보내다가 특별한 증상이 보이질 않아 그러려니 하고 살아왔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다시 기절을 했다. 그 사람은 내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목격자의 진술을 하며 걱정을 했다. 처음에는 이번에도 집에서 기절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집에 함께 있기에 기절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지내다가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딱히 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 무렵 자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찾아본 후 세상을 떠나려 했지만 그런 행동을 쉽사리 할 수 없었던 것은 아이들 때문이었다. 나쁜 부모를 만나서 네들이 마음 고생했고, 아빠가 살아갈 용기가 부족해서 먼저 떠나 세상에 남겨짐에 미안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준비해 주고 싶다는 생각에 생명보험을 가입했다. 다른 조건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유심히 본 것은 가입 후 일 년이 지나면 사인 불문하고 돈을 준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자살까지도. 


하루빨리 일 년이 지나길 기다렸지만, 그날이 오기 전에 격한 싸움을 하고 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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