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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보자 Mar 18. 2023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송뿐인 것 같아

이혼 소송은 처음이라 3

별거의 긍정적 효과는 그 사람이 나를 조금 더 객관화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집에 살 때는 정제되지 않은 말이나 거친 행동도 가족이란 공동체의 구성원이란 이유로 내가 다 감당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별거를 시작한 순간 우리는 가족이 라고도, 가족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별거의 부정적 효과는 아이들이 눈앞에서 사리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출근할 때 쫄래쫄래 따라다닌 딸과 퇴근할 때 달려와 품에 안긴 아들이 내 삶에서 없어졌다. 예상은 했다. 아무리 내 집이라도 별거하는 사이에 보고 싶다고 불쑥불쑥 찾아가 아이들과의 시간을 보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러나 5살, 3살의 아들과 딸은 존재만으로 세상 가장 이쁠 때였기에 항상 눈에 밟혔고, 매일이 어렵다면 매주라도 보고 싶었다. 혹시나 서로의 감정의 골이 깊어짐으로 그것마저도 원활하지 않다면 이혼 후 비양육자 부모의 자녀 면접처럼 최소한 한 달에 한두 번은 시간을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빠가 아이들과 같은 장소에서 시간을 함께하는, 대부분의 아빠들에게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사실이 나에겐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들 면접을 위해 연락을 한 날이었다.


“애들과 면접하는 날짜를 정해야 될 것 같아.”


“네가 우리 집을 나간 순간 넌 더 이상 가족이 아냐. 애들 볼 생각은 하지도 마.”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으면 내가 애초에 나가지도 않았을 거 아냐.”


“이유가 어떻든 네가 나간 순간 애들과의 관계도 끝난 거야.”


면접 자체를 거부하다니. 역시 첫 통화부터 예상할 수 없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 넌 항상 내가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았어. 만약 네가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어떻게 지난 인생을 거짓으로 포장해서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이제와 이런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찰나의 후회가 떠올랐어도 지금은 명확하게 매듭지어야 할 일이 있으니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집을 나갔어도 나는 애들 아빠고 양육비를 부담하고 있잖아. 애들을 만나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양육비는 당연한 거고, 애들을 보고 싶으면 짐 다 갖고 다시 들어와.”


통화가 끝났다. 첫 통화부터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 집을 나올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주변에 이혼한 사람이 없어서 별거와 면접에 관하여 상담할 곳은 없었지만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것은 천부적 권리이고, 양육비 역시 당연히 부담하려 했기에, 그 사람과 떨어졌지만 아이들과는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별거 후 처음으로 눈물이 났다. 도피처라고 생각했던 새로운 집 안에 있으면서도 선택에 대한 후회와 평탄치 않은 인생에 대한 저주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겨우 억눌렀던 서러움이 흘러나왔고 애써 멈추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 없었다. 이미 그 사람의 가족과도 사이가 많이 틀어졌지만 그나마 말이 통할 것 같은 처남을 만났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주변인들에게 설득을 부탁하는 것뿐이었다.


“저희 문제는 저희 사이의 일이고 그와 별개로 아이들을 정기적으로 만났으면 해요. 잘 좀 얘기해 주세요.”


“네가 들어오면 다 해결된다고 하는데…….”


“저희가 그전에 어떻게 살았었는지, 어느 정도로 싸웠는지 잘 아시잖아요. 다시 함께하면 둘 중 하나가 어떻게 될지 몰라요. 제가 그 사람이랑 끝내려고 나온 것이 아니고 잠시 떨어져서 서로에 대한 생각을 정리 좀 했으면 해서 별거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애들 못 보게 막는 게 어딨 어요.”


“네가 무슨 말하는지 알겠어. 그런데 내 동생이 지금 심리 상태가 불안정하니까 네가 이해해 주면 안 될까?”


이해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동생의 의사를 반복한다. 처남과의 대화도 소득 없이 끝났다. 상대방의 가족이 날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 섞었다. 팔이 안으로 굽지 어찌 밖으로 굽힐 수 있을까.




원천적으로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한 사람과는 소통으로 뭔가를 해결할 방법이 더 이상 떠오르질 않았다. 애 닳는 마음과 원망으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보내며 어느덧 별거를 한 지 4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어린이집 카페에 올라오는 아이들의 사진을 통해 잘 자라고 있음은 알 수 있었지만 “아빠”라고  부르며 달려와 안기는 목소리와 촉감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짙어졌다. 전화를 걸었다.


“이렇게 살다가 내가 먼저 잘 못 될 것 같아. 아무래도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송뿐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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