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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보자 May 10. 2023

변호사를 만나다

이혼 소송은 처음이라 4

소송이라는 일이 나에게 생길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물론 드라마에도, 영화에도 많이 나오고 주변의 누군가는 겪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적어도 나에게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긴 이혼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많이 들어서 익숙해진 단어지만 내 일상에 들어올 말이라곤 생각 안 했으니 말이다.


이혼하는 부부에게 아름다운 이별이란 아침 8시의 혼잡한 출근길 지하철 속에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드문 일이다. 단란한 가정을 바랐음에도 가질 수 없었던 것도 모자라 격렬한 싸움 끝에 소송을 결심한 나에게는 깔끔한 헤어짐의 과정도 허락되지 않았다.


소송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였다. 주변에 이혼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과정에 대해 이야기도 듣고, 좋은 변호사도 소개받고 했을 텐데 그런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변호사를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 “나 이혼하려고 하는데 네가 아는 변호사 좀 소개해 줄래?”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웠다. 이혼하는 사실이 부끄럽다기보다는 남들이 너무 이르다고 말렸음에도 나는 다르다며 밀어붙였던 결혼의 좋지 못한 결말을 보여주기 싫었다. 


이럴 때 믿을 곳은 가족 밖에 없다고 결국 친척에게 조언을 구해 변호사로 일하시는 친구를 소개받았다.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한 후 첫 미팅 약속을 잡고 통화를 끝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조금 더 그 사람을 감내할 수 있으면 소송까지 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는 과정을 반복했고 변호사와 만나는 날이 다가왔다.




추운 겨울의 일요일 오후였다. 날씨 때문에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고, 날짜 때문에 사무실에는 나와 변호사뿐이었다. 책상 위와 옆 보조 테이블에 가득히 쌓여있는 서류 봉투와 그 속을 채운 서류들, 책장에 꽂혀있는 한자로 쓰인 책들이 너무도 생경했지만 처음 인사를 나눈 변호사의 인상이 너무도 편안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된 이유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무조건 이혼을 해야만 하고 양육권과 친권을 갖고 오고 싶다고 했다. 그 간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변호사가 쉬운 싸움은 아니라고 했다. 이유인즉슨 불화의 근본적인 원인, 사기에 의한 결혼의 경우 혼인을 취소하거나 위자료를 청구하기 위해서는 인지한 시점으로 6개월 이내에 소를 제기해야 하는데 이미 2년 반이 지난 지금은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 일어난 지속적인 거짓말과 무분별한 소비로 벌어진 경제적 문제, 예측할 수 없는 폭력에 의한 일상생활의 어려움과 자녀들에 대한 악영향 등으로 더 이상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없음에 중점을 둬서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2년 반 전에 정리했었어야 됐을, 아니 결혼 초기에 오싹한 느낌이 들었을 때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갖었더라면 여기까지도 오지 않았을 일을 늦었지만 지금이나마 풀어나가자 하는 생각에 소송으로 인한 착잡함보다는 개운함이 더 가득한 채 변호사 사무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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