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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보자 Nov 10. 2019

나는 오늘 이혼했다.

내가 돌싱이라니



나는 오늘 이혼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돌아온 싱글’이 되었지만 막상 생각했던 것처럼 기분이 좋지 않다. 협의이혼이 아닌 소송을 통해 이혼을 마무리 짓게 되어, 헤어질 결심을 한 순간부터 이혼이 확정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흘러있었고, 그에 비례한 힘든 고난의 길을 지나왔다. 보통 부부간 협의나 원심에서 마무리되는 이혼 소송이 원심을 지나 항소심을 넘어 상고심까지 진행됐다. 유명하지도 않고 재산분할 대상 재산이 많지도 않은 평범한 부부의 이혼 사건이 대법원까지 간 것이다. 대학생 때 법학을 전공했음에도 대법원과의 접점이 없었는데, 뒤늦게나마 전공과 인생의 연결고리가 생긴 것이다.


3년이 넘는 소송의 시간 동안 나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것 중 하나는 이혼이 확정된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배우자가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아이들도 올바르게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았고, 다시 한번 인생의 꽃길을 걷는 순간이 찾아올 것 같았다. ‘Happy Divorce’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사진을 찍거나, 이혼 축하 파티를 하거나, 인생의 새로운 장을 펼치기 시작한 나를 위한 선물을 사는 모습도 기대했다.


니콜 키드먼 이혼 자극 짤




그런데 인생의 버팀목 같던 상상들을 현실로 만들려는 순간, 왠지 모르게 가슴 어느 한편에서 내키지 않는 마음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럴까. 나도 모르게 설마 이혼을 후회하는 것일까. 다시 생각해 봐도 그건 아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비록 승소했을지라도 이혼 확정 판결은 국가에서 공인해주는 결혼생활의 실패자 마크 같았다. 대법원 사이트에 들어가 가족관계에 관한 증명서를 발급했다. 역시나 내 혼인관계를 국가에서 증명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실패에 관대하지 못한 풍조가 있는데 이것은 가정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떠한 정보도 주어지지 않았다고 가정할 경우 이혼한 사람에 대해 좋은 시선보다는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더 강할 것이다.
 
 결혼도 행복하려고 한 것이고, 이혼도 행복하려고 한 것이다. 이제는 남이지만 결혼식을 막 올렸을 때는 행복했던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신혼이라는 그 특유의 달콤함에 취했을 때는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시간이 잘 갔다. 그러나 불행의 끝에서 행복하려고 한 이혼에는 그러한 달달함은 없다. 달달함 대신 이혼 특유의 웃픈, 씁쓸함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웃프다


누가 만든 말인지 모르지만 정말 잘 만든 말이란 생각한다. 내가 정말 바랬던 일이고, 이렇게 됨으로써 나는 더욱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기분이 별로다. 차라리 누가 뺨이라도 때려주면 그 핑계로 울고 싶은 기분이다. 누가 보면 아직 전 배우자에 대한 마음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러한 마음은 미세먼지만큼도 남아있지 않다.


 소송이 끝나면서 담당 사무장님에게 나의 이혼 사건에 대해서 물었다.


“저 같은 경우가 많이 있나요?”
 “거의 없죠.”


특이한 케이스의 이혼이었다. 전 배우자의 거짓말로 시작한 결혼 생활은 처음부터 어긋난 톱니바퀴 같았고, 그러한 균열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살았지만, 새로운 문제는 계속 등장했다. 결국 이혼소송이 진행될 때 나라는 제품은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그래서 지난 연인으로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앞으로의 인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전혀 없다. 지금은 악에 받친 감정만 남아있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감정도 서서히 사라질 테고 진심으로 그렇게 되길 바란다. 누군가를 미워하는데 나의 시간, 감정, 체력을 소모하는 것은 정말 낭비라고 본다. 


‘두고 봐. 보란 듯이 잘 살 거야.’


차라리 이런 삶의 태도가 이혼 당사자에게는 훨씬 적합한 것 같다. 이혼을 하게 되면 삶의 여러 부분에서 변화가 찾아온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좋든 싫든 살을 맞대고 살던 배우자가 사라진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부모 중 한 명이 사라집니다. 집을 떠나는 사람은 집에서 자기 물건을 챙기고 나간다. 남아 있는 사람은 난 자리가 느껴지는 곳에서 계속 삶을 이어가거나,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 인생에서 몇 안 되는 큰 변화의 시기에 다른 사람의 불행을 바라고, 나아가 복수를 하려고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은 짧은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물론 결혼하는 과정과 이혼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하여 억울하거나 화가 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럼 헤어지는 과정에서 정당한 절차를 통해 자신에 대한 보상을 당당하게 요구하면 된다고 본다. 헤어지고 나서 미워하는 것은 결국에 남는 것이 없는 의미 없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새롭게 시작될 나의 인생에 대해 최대한의 예우를 갖춰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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