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만 걷자
아이와 낚시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궁금해하는 아이야말로 살아있는 '호기심 천국'이다. 다양한 질문과 만족할만한 답변이 오고 간다. 나의 짓궂은 농담에 아이가 울먹거리는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 더욱 아이를 놀린다. 아이는 결국에 울어버린다. 울음마저도 사랑스러운 존재에게 아빠가 할 수 있는 온갖 재롱을 부려 달래주면 방금 전까지 울먹였던 아이는 자신이 아닌 것 처럼 세상 환하게 웃는다. 그 사이에 내 인생의 동반자는 텐트 옆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다. 소리만 들어도 무슨 음식을 준비하는지 알 것 같다. 냄새만 맡아도 불과 하루 전에 결심한 다이어트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사라진다. 엄마가 차려준 밥 한 숟갈을 입에 넣자마자 아이는 태어나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볻다는 표정을 짓는다. 우리는 그런 아이를 사랑스레 쳐다본다. 하늘에 떠 있는 별과 달이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게 내가 꿈꿨던 결혼 생활의 모습이다. 아마 여러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전형적인 행복한 가정의 모습도 이러하지 않을까 싶다. 아빠와 엄마, 아이들이 주말의 여유를 즐기며 행복함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영상에 너무도 길들여졌나 보다. 그래서 난 행복한 가정이 보편적이자,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결혼을 해서 아이가 태어나면 가족들과 함께 걸어갈 꽃길이 저절로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결혼했을 당시 나의 부모님 사이는 그리 좋지는 않았다. 아마 내 기억으로는 두 분의 친밀도를 그래프로 나타냈을때 최저점에 있었을 시기였다. 그럼 난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뭐라도 고민하고 사소한 깨달음이라도 얻었어야 했는데 그러하질 못했다. 내 나이 28살, 인생의 전환점으로 결혼을 택했다. 그 떄의 난 내가 겪어보지 않은 것에 너무도 무지했다. 책으로 읽고, TV에서 보고, 주위 사람 이야기를 들어도 봤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았기에 받아들이는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
음식은 먹어봐야 맛을 알고, 뼈는 부러져봐야 눈물도 안 나올 정도로 아프다는 것을 알고, 숙제는 안 해가야 사랑의 매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 결혼은 해봐야 수학 7대난제처럼 난해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뭣도 모르는 난 자신감에 충만하여 남들보다 빨리, 남들 앞에서 어깨 쫙 피고 버진로드를 걸었다.(무식하다면 용감하다고 왜 친구들이 결혼을 늦게 하는지 지금은 이해가 된다)
30년 가까이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이 한 공간에서 살을 맞대고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치약을 짜는 위치, 설거지하는 타이밍 등 조그마한 부분에서부터 야근에 대한 생각, 회식에 대한 선입견, 경조사에 대한 견해차 등 나름 중요한 의미를 갖는 부분까지 달라도 너무 다를 수 있다. 모든 말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당연하리만큼 타당하다. 옳고 그른 것이 아닌 서로가 우선시하는 것이 달랐을 뿐이다. 문제는 이렇게 다른 부분이 한 두 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겉모습부터 다른 사람이다. 내 가슴에 없는 것이 상대방에겐 있고, 나의 하체에 있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없다. 현미경으로 세세하게 들어보면 높아지는 배율만큼 차이점이 늘어난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차이점을 결혼 전에 모른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화장실에서 쉬를 할 때 변기 뚜껑을 올리고 싸는지 내리고 싸는지, 담배를 집에서 피우는지 밖에서 피는지, 코딱지를 파서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살아봐야 알 수 있다. 연애할 때는 가장 좋아 보이는 가면을 쓰고 만나기에 이런 것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큰 문제는 결혼 전에도 알 수 있다. 종교에 대한 차이, 이성관에 대한 차이, 직장에 대한 이해도 등은 사전에 알고 결혼한다. 그런데 사소한 부분은 결혼 전에 모를 수 있고, 이런 자그마한 문제가 결정적 한 방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결혼은 어렵고 언제, 어디서 폭발하지 모르는 문제 같다.
택배 상자가 품고 있는 뽁뽁이가 눌려 터지듯 사소한 다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다 코렐 그릇마저도 산산조각 내버릴 만큼 강력한 싸움이 일어났다면 이혼이란 녀석이 미세먼지처럼 어느새 내 주변에 와있다. 숨만 쉬었을 뿐인데, 이혼을 유발하는 조각들이 호흡기를 통해 뇌에 정착한다. 우주의 기운처럼 모인 아팠던 기억의 조각들로 이혼을 결심했는데 야속한 운명은 혼인 생활을 쉽사리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선물을 준다.
두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아이라는 선물이다. 처음에는 아이가 있어서 마음도 다잡고 서로 이해도 해보려 했는데 이것도 오래가지 못한다(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랬다. 아이가 두 사람 사이를 좋게 만드는 경우를 봤지만, 내 생각엔 그 사람들은 원래 잘 맞았을 팔자일 것이다).
아이가 있으면 이혼에 대한 고민의 질이 달라진다. 이혼하면 아이는 누가 키워야하는지,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가장 피해가 적게가게 설명할 수 있을지 등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걱정들이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고민들은 페스추리처럼 겹겹이 쌓여 결국 내 안에는 108 번뇌가 자리 잡는다. 그러한 고민이 쌓여가면서 전 배우자와의 사이에서는 정말 많은 사건이 일어났고, 굳이 겪어 보지도 않아도 될 일을 겪고, 느끼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감정들을 느껴봤다. 지금은 그 시간들도 헛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평생을 다투면서 살 수 없지 않은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누군가 말했다. 이 일이 지나면 꽃길만 걸을 것이라고. 얼마 남지 않았다고.
꽃길을 걷기 위해 나는 이혼을 택했고, 치열하게 버텨왔다. 행복하려고 한 결정이자 치르는 대가인데 한편으로 씁슬한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