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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 Aug 30. 2021

둘째를 낳아야 끝난다는 둘째 고민

엄마, 나 둘째 낳아도 될까?


돌아가신 엄마한테 지금 딱 한 가지를 물을 수 있다면, ‘나 둘째를 낳아도 될까?’하는 질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 둘째 가지면 진짜 안 되는 걸까?’ 이거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쯤부터였나, 엄마와 내가 입과 손과 마음, 아니 모을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모아 간절히 바랬던 소망은 내가 아기를 갖는다면 ‘딸을 낳는 것’이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아빠와 남동생과 남편(당시에는 남친)이 때때로, 아니 종종, 아니 자주 이해할 수 없거나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할 때면 엄마와 나는 서로 찡긋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아멘’을 외치거나 새어 나오는 웃음을 누르며 조용히 성호를 긋곤 했다.


‘엄마 딸이 꼭 딸을 낳게 해 주세요’라는 무언의 의식이었다. ‘이런 마음 가져서 태어나지도 않은 내 아들한테 괜히 벌써 미안하네’라는 말도 종종 덧붙이며 킥킥대곤 했다. 최근 들어 딸 선호 트렌드가 크게 유행하기도 훨씬 전부터였고, 그냥 나 스스로가 TV를 보다 보면 남자 아기들은 아이고 귀엽네 정도였지만 (추)사랑이 같은 여자 아기들을 볼 때면 너무 예뻐 죽겠어서 가슴이 막 뛰던 개취(개인의 취향) 때문이기도 했다.


또, 엄마와 나의 관계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해주고, 때론 이해 못할 내 남자들의 세계에 대해서도 마음껏 킥킥댈 수도 있는 그런 모녀 관계를 얻기를 오래도록 바라 왔던 것이었다.




4년 전쯤, 임신을 하고 뭔가 날짜 상 느낌이 쎄-하다고 느낀 나는 ‘아, 내 뱃속에 있는 이 친구는 아들이다’라고 매일 나 자신을 세뇌시키기 시작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한평생 딸을 원하며 살아온 내가 진짜 아들을 마주했을 때 혹시나 너무 실망하거나 슬퍼하게 될 것이 두려웠고, 아기에게도 너무 미안할 것 같아 나 자신을 미리 단련해두려는 목적이었다.


그리고 두어 달 뒤 산부인과에서 성별을 확인하던 순간, 나는 선생님 앞에서는 ‘아 그래요. 확실한 건가요?’라고 담담한 척 재차 확인한 후 원장실 문을 닫고 나와 그 앞 소파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서럽게 울어댄 탓에, 아들을 바라던 엄마가 딸이라는 말을 듣고 우는 건가 오해를 샀을 것도 같지만, 사실은 내 아기가 딸이라는 사실이 너무 좋아서, 행복해서, 감사해서, 그래서 흘린 눈물이었다.


엄마와 수도 없이 올렸던 장난을 가장한 진심 어린 기도들이 하늘에 닿은 걸까, 몇 달 전 엄마를 잃고 살아갈 의미를 잃어버린 나를 신이 다행히 버리지는 않은 건가, 엄마가 하늘에서 힘을 써서 딸을 보내준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라 한참을 울었다.




이렇게나 간절했던 ‘딸’에 대한 바람은 또 하나의 엄마의 당부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그건 바로 ‘하나만 낳아서 잘 키워라’였다.


참고로 말하자면 엄마에게 자식으로는 나 말고도 아들이 하나 더 있는데, 우리가 세-상 사랑하는 내 남동생을 낳은 것을 엄마가 후회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둘을 키우는 게 힘들었기 때문에 엄마 딸은 그냥 하나만 낳아서 좀 수월하게 키우며 살았으면 한다는 의미에서였다. 고로 내 인생의 아기가 딱 한 명이라면 우리가 오래도록 소망해 온 딸을 낳았으면 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었다.


엄마는 그 옛날 시절에도 아기를 한 명만 낳고 싶어서 ‘하나회’라는 동호회에도 가입하여 아기 하나만 있는 집들과 교류하곤 했을 만큼 외동에 진심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 좋게 포장하면 여리여리,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비리비리한 딸아기(=나)를 보고는 동네 아줌마들이 그렇-게 훈수를 두었단다. 이런 비리비리한 애를 어떻게 믿고 키우냐고, 얼른 하나 더 낳으라고.


그런 말들에 흔들려 하나를  낳아 키우느라 힘들었다는 엄마는,  아줌마들은 키워주지도 않을 거면서  그런 말을  거냐, 아니다 이렇게 건장하고  부러지게  거였으면 처음부터  그러지  태어나자 마자는 그렇게 비리비리했냐  때문이다! 이에 나는, 아니다 내가 뭐가 문제냐, 핑계다 엄마가  말에 넘어간  문제다, 결국 그건 엄마가 자초한 일이다! 우리는 ‘아멘의식 뒤에 자주  얘기를 콩트처럼 덧붙이며 웃곤 했다.




이러한 연유로 엄마랑 '딸 하나만 낳기'로 무언의 약속을 한 나는 첫째를 낳고 누구나 다 빠지고야 만다는 끝나지 않는 질문의 굴레에 빠졌다. 바로 그 무시무시한, '둘째를 낳아야 끝난다는 둘째 고민'이다.


나 또한 의심의 여지없이 하나만 낳으려고 다짐해왔었고, 게다가 하늘에 감사하게도 그리 원하던 딸을 품에 안았는데, 세상에 그 딸이 너무너무 예쁘다. 내가 딸을 예뻐할 거라는 사실은 예상했던 바이지만, 그 사랑의 정도가 상상을 넘어서서 이 아기에게 피붙이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정도에까지 미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이 아가가 하필 어려서부터 (비교적) 순하고 키우기 수월한 아기였기 때문에, 아기에게 이미 헤까닥 해버린 나는 감히 둘째를 낳아볼까 하는 고민이 자꾸 드는 것이다. 본인이 외동인 남편의 강력한 추천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딴 사람도 아니고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했던 사람인 우리 엄마가 나를 위해 당부한 바로 그것, '딸 하나만 낳아서 잘 키워라'에 반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니. 이 정도로 일생일대에 중요한 결정을 할 때면 누구보다 먼저 논의를 했던 사람이 엄마였는데, 지금 나는 엄마에게 그걸 물어볼 수가 없다.


엄마, 우리 딸이 상상 이상으로 착하고 수월해, 이 정도면 둘째 낳아도 좀 괜찮지 않을까? 이 질문을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어 몇 년을 울었다. 갈팡질팡 고민에 따른 답답함에서 시작했다가, 결국은 물을 이가 없는 서러움에 허덕였다.




그리고 결국 나는, 둘째를 가져보기로 결심했다.


엄마, 막상 아기를 낳고 보니 내 아기를 나보다 더 사랑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 엄마는 내 엄마니까 나를 위한 선택을 하라고 했던 거겠지, 그런데 나도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서 내 아기를 위한 결정을 해보려고 해.


훗날 엄마를 하늘에서 만나면, ‘으이그, 엄마 말 안 듣더니 힘들었지?'라고 할 것 같은데, 그럼 그 순간만을 평생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엄마 품에 안겨서 울어버려야지.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다 괜찮을 것 같아.




사진 © 460273,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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