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나 Aug 25. 2021

아기를 보내며, 엄마를 생각한다.

계류유산 소파술 후기 (1)


아, 여기. 첫째를 분만한 층이다.


환복이 완료되기는커녕 입고 있던 옷을 다 벗지도 못했을 무렵 '준비되셨어요?' 재촉하는 소리가 커튼 너머 뒤통수에 바짝 붙어 와 있다. 좋지도 않은 일을 코앞에 둔 지금,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은근한 압박을 받자 얼굴이 굳는다. 하지만 잠시 후 나를 수술실로 부드럽게 밀어 넣으며 어깨를 타닥 두 번 두드려 위로하는 듯한 간호사님의 다정한 손길에, 나는 자존심도 없는지 또 갑작스레 고마워져 눈물이 핑 돈다.


수술실은 올여름 들어가 본 방 중 가장 춥다. 사이버 여치 트랜스포머처럼 생긴 수술대에 두 팔 두 다리를 활짝 벌리고 걸터눕자, 속옷도 없이 원피스 병원복 하나만 달랑 걸친 몸이 파워냉방 바람 속에 달달 떨린다. 젊은 간호사 두 분이 양쪽에서 밴드 같은 것으로 팔과 다리를 수술대에 고정시키기 시작한다. 미리 읽어둔 소파술 후기에서 여러 번 본 내용이었지만 막상 묶임을 당하니 기분이 유쾌하지 않다.


콧구멍 두 개에 빨대처럼 샥 들어가는 산소 호흡기도 끼운다. 어떻게 이게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 생각할 수가 있었을까 싶을 만큼 코에 뭐가 들어간다는 건 은근히 불편한 일이었네. 이래서 엄마가 그렇게 이걸 빼 달라고 했었구나. 자꾸만 손으로 산소 호흡기를 잡아 빼던 엄마. 그걸 생명줄처럼 붙잡고(실제 생명줄이었다) 계속해서 말리던 우리. 불편하다고 그냥 빼고 있겠다며 인상을 쓰던 엄마.




있는 힘껏 왼쪽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를 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왼팔을 심각하게 들여다보던 간호사님이 내 오른팔을 묶고 있던 간호사분께 난감하다는 말투로 “깨끗해요..”라고 한다. 이건 또 뭔 소리래, 전문용어쯤일까 은어쯤일까, 하지만 환사 경력이 꽤 되는 나는 듣자마자 혈관이 잘 안 보이는구나 알아차려 눈을 질끈 감는다.


혈관을 찾는답시고 고무줄을 어찌나 쥐어짜듯 세게 묶은 건지 이것만으로도 왼팔이 벌써 너무 아파 도망치고 싶다. 덜 깨끗한가(?) 싶어 시도한 오른팔 혈관 찾기는 실패로 돌아간다. 혈관을 연결하지 못한 채 생살만 찔렀다 뺀 셈이어서인지 바늘을 빼고 나서도 억 소리가 나게 아파 나는 애처럼 엉엉 시끄럽게 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나는 그분들의 집중을 흐트러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 덤덤한 척을 하려 애써본다. '그들을 놀라게 해서는 안돼.'


본인들끼리 뭐라 뭐라 속닥대더니 왼쪽에는 24인가 뭔가로 해보겠단다. "더 얇은 건가요?" 그렁그렁한 눈으로 '제발 그렇다고 말해줘' 열망을 담아 묻는다. "네 그래도 이쪽 팔이 좀 더 잘 보이네요." 아니 그럼 애초에 더 가느다란 바늘로 양쪽 팔 중에 어디가 더 잘 보이는지 동시에 잘 확인을 한 후 한 번에 좀 성공해주지! 하지만 이미 멘탈이 털려 버린 나는 따져 물을 기운도 의향도 없다.




혈관이 얇아 매번 참 힘들었던 엄마. 나중에는 양쪽 팔은 당연히 모자라 손등 발등에까지 수차례 바늘을 찔러대던 많은 날들. 딱 봐도 초짜 같은 젊은 간호사쌤이 들어와서 엄마 팔을 잡고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이 오면, 나는 오래도록 그 순간만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다다다다 "엄마 혈관이 진-짜 안 보여서 항상 여러 번 시도하고 결국 전문 간호사님이 오셔서 연결해주시거든요.. 지금 바로 전문 선생님을 좀 불러주실 수 있을까요?" 읍소를 하곤 했다.


대충 살살 말해서는 내 말을 귓등으로 듣고 꼭 수 차례 시도하고 수 차례 실패를 한 끝에야 전문 선생님을 콜 해주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다년간의 경험과 데이터가 쌓인 후에는 반드시 전문 선생님을 한 번에 소환하기 위해 확신과 부탁 사이를 바삐 오가며 설득을 성공시키려 애를 썼다.


그러고 보니 나에 대해서도 이 말을 처음 듣는 것 같지가 않다. 내 몸도 똑같구나. 엄마는 매번 이렇게 아팠던 건데.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싫었을까. 그렇게 여러 번을 찔려도 소리 없이 눈물만 줄줄 흘리며 참아내던 엄마. 반대쪽으로 내 손을 꼭 붙들고 울기만 하다가 끝나고 나서야 겨우 겉 숨을 후우우 내쉬던 엄마. 이런 기분이었구나. 이래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숨죽여 울기만 했었구나. 제발 이번에는 끝나기만을 기도하면서.




항생제 테스트를 하는 바늘이 엄청 굵어서 매우 아프다고 분명 후기에서 봤는데. "이제 마취만 하면 되는 건가요?" 간호사는 분명 “네”라고 대답해서 나를 안심시켜놓고는 몇 분이 지나 안면을 바꾸어 또 왼쪽 팔에 항생제 바늘을 꽂는다.


아아아악! 첫째 낳을 때도 이거 했던 것 같은데. 그땐 더 무자비하게 굵다던 무통주사도 아픈 줄도 모르고 지나갔는데. 대체 진통의 통증이 얼마나 심했으면 이 정도로 아팠던 기억이 남아있지도 않을까. 그런 출산을 내가 무슨 깡으로 또 하려고 했던 건가.


그러고는 몇 분쯤 가만히 누워 선생님을 기다린다. 추워서인지 긴장되서인지 몸이 자꾸 덜덜 떨린다. 눈에 보일만큼 몸이 흔들릴 때면 숨이 가빠 가슴께가 징-하며 아프다. 기계에서 자꾸 삐삐삐 소리가 나자 "심호흡 좀 천-천히 해볼게요"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난다. 열심히 숨을 들이마시고 또 내쉬고, 어떻게든 내 몸과 마음을 스스로 안정시켜보겠다고 홀로 고군분투하는 이 몇 분의 시간이 참 외롭다.



사진 © Free-Photos, 출처 Pixabay



​[브런치북] 엄마를 떠나보내고, 엄마가 되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