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임, <게임의 동사>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 새로운 기술 매체의 리터러시와 크리에이티브를 연구, 비평, 실험하는 기획 유닛 ‘모르는 게임'은 2021년 하반기 활동 주제로 <게임의 동사들>을 선정하였다. 멤버 권보연, 오영진은 앞으로 <게임의 동사들>를 빅텐트 삼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모르는 게임' 멤버를 대표해 권보연이 작성한 이 글은 <게임의 동사들> 프로젝트의 배경과 논리를 담은 서문에 해당한다. ‘모르는 게임'은 브런치 매거진을 통해 고정 멤버그리고 협업 동료들과 함께할 글과 작품 활동을 기록하고 축적할 것이다.
인류학자 롤립손 (Rollefson G.O)은 요르단 지역에서 출토된 B.C 6천 년 무렵의 유물에서 만칼라(Mancala) 보드게임의 원형적 흔적을 살폈다. 그는 인류사에서 가장 혁명적 문화와 기술 발전을 일군 신석기인들이 숙련과 운명이 뒤섞인 게임을 고안해 놀이를 즐겼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길이 39cm, 너비 23~16cm의 평평한 석회암 돌판은 영리하면서도 솜씨 좋은 신석기인의 손길을 따라 지름 2~4cm 크기, 두줄 정렬된 12개 홈이 파였다. 그리고 돌판은 다시 상대를 정해 낱알과 작은 돌멩이 등을 옮기거나 뺏고 뺏는 놀이 행동이 덧입혀져 새로운 용도와 작동 방식을 지닌 ‘무엇’이 되었다. 어제의 흔한 자연물인 돌판이 사냥을 하고, 곡식을 저장하고 음식을 만드는 생존 도구와는 전혀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게임’이라는 매체로 재탄생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고대 보드 게임을 둘러싼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미지의 시간을 떠올려 보게 만든다. 그리고 인류학자의 섬세한 설명이 보태져 주체로서의 인간과 매체로서의 게임 간 관계를 통찰하는데 필요한 중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덤덤한 자태마저 아름다운 홈 파인 돌판을 보며 우리는 돌멩이, 곡식, 동물 뼈와 같은 자연물부터 디지털 네트워크와 그래픽, AR/VR, 인공지능 등 전자 정보 통신 최첨단 영역에 이르기까지 게임이란 동시대 인류와 기술을 형식적, 경험적, 미학적 차원으로 연결하는 지점에서 창조되는 상호작용, 즉 인터랙션 자체가 존재 목적이자 작동 방식인 매체임을 상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르는 게임' 활동 주제를 정하는 중 멤버 오영진이 <올드 맨스 저니>에서 '걷기'의 뜻과 가치를 헤아리는 글 작업을 하며 권보연과 이에 대해 토론하는 계기가 있었고, 권보연은 '먹다'라는 행위와 '맛'이라는 감각에 천착해 게임 미학을 연구하려는 계획을 공유하면서 <게임의 동사들> 프로젝트는 실행 기획을 속도감 있게 수립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나는 선사시대 보드 게임 이야기가 전과 달리 새로운 프레임으로 감지되는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홈 파인 석회 돌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신석기인을, 돌판 위에서 벌어진 어떤 작용 대신에 그들이 선택하고 주고받은 작지만 분명한 실제 ‘행동’에 초점을 맞춰 심층의 의미와 상징을 살펴보고 싶다는 의욕이었다. 연구자 야스퍼 율(Jesper J.)이 강조하듯 게임은 상태 변화 기계이며 동시에 플레이어가 반드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매체이다. 우리의 작업은 이중 후자에 방점을 두어 진행되는 관찰이자 비평이며, 나아가 새로운 행동을 창안하려는 실험의 시작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플레이어와 시스템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든 작용과 반작용의 실체는 ‘행동’에서 출발하고, 변화로 이어지는 여정에 있다고 판단한다. 이 대목에서 선구적 게임 연구자 크리스 크로퍼드(Crawford C.)의 주장을 살펴보자. 그는 인터랙션 매체로서 게임의 주제는 시스템을 가득 채운 사물들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 즉 플레이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 중심 게임 시스템은 그에 속한 모든 것을 이름이나 개념을 지시하는 명사(Noun)가 아니라 실천적이고 물리적인 행동, 행위, 동작을 발생시키는 동사(Verb)에 의해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 본질적 작동 원리에 예외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게임의 특징을 논할 때, 상호작용은 필수로 언급되는 중요 개념이다. 영문 인터랙션(interaction)을 그대로 해석해보자.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시스템 혹은 시스템과 시스템이 서로 자극과 반응 행동을 주고받는 연속된 피드백 프로세스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번역 과정에서 인터랙션의 어휘가 가장 강력히 지시하는 ‘액션’, 즉 ‘행동’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대신 두 주체가 주고받는 행동에 따른 상태 변화나 영향 관계 또는 논리를 칭하는 ‘작용’이 자리를 점유하게 되었다. 상호작용이라는 넓은 개념에 뒤섞여 사용되는 흔한 용어가 되었지만, 영향(affect)과 행동(action)은 인터랙션 매체로서 게임을 경험하고, 해석하고, 만듦에 중요한 두 축이지만 서로 다른 초점과 굴절을 지닌 프레임으로 구분되어야 한다.
게임은 플레이어의 직접 경험을 강조하는 매체다. 그러므로 게임의 속성에 충실한 설계란 플레이어 스스로 선택하고, 조합 가능한 행동의 집합을 마련하는 일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때 디자이너에게 중요한 것은 게임을 구현하는 기술이 돌판과 나무, 종이를 지나 디지털 첨단 기술 무엇과 결합하든 간에 본질은 변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터랙션은 결국, 언제나 동사의 문제다. 자신의 주장에 늘 직설적인 표현법을 따랐던 크리스 크로퍼드는 이러한 본질은 비단 게임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모든 소프트웨어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플레이어는 무엇을 하는가? 동사는 무엇인가?” 를 소프트웨어 디자인 제1의 법칙으로 천명하면서 이 질문에 정교하고 창의적인 답을 마련하는 것이 설계자의 역할임을 분명히 한다. 그의 논리를 따른 다면, 게임을 포함해 게임과 유사하거나 그 영향권 아래에서 창작된 작품, 서비스, 제품 등 인터랙션이 중심인 매체에서 경험 디자인이란 전체를 관통하는 객관적 또는 주관적 플롯에 해당하는 가장 큰 행동과 그 주변과 과정 구성을 위한 에피소드에 필요한 수많은 행동을 설계하는 과업임이 분명해진다.
가상현실의 아버지라 불리는 재런 러니어(Lanier J.)는 우리를 현실적 물질성에서 벗어나게 하는 인터랙션 매체 VR을 처음 경험하던 1980년대의 어느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가 가상 세계에서 처음 목격한 것은 시애틀 도심 위로 솟아 있는 자신의 거대한 손이었다. 손목에서 손끝까지 300미터는 되어 보이는 손은 분명 버그였지만, 그는 터무니없이 큰 손을 움직여 물 위에 떠 있는 페리선을 툭 건드렸고 가상의 손은 의도대로 배에 닿으며 정확히 작동했다. 러니어는 당시의 경험을 진술하며 VR 매체에서 손을 쓰는 ‘행동’이야말로 플레이어를 관찰자가 아니라 가상 세계의 거주자로 전환시키는 조건이라 말한다.
플레이어는 게임에 속한 자신의 대행 신체로 가상 세계의 무언가를 잡고, 다른 가상화 아이템 안에 그것을 넣고, 다시 자신의 가상 신체에 둘러메고 달리고 뛰고 넘어지고 춤을 춘다. 제각각 다른 인터랙션을 유발하지만 모두 행동, 행위, 동작이라는 점에서는 ‘동사’로 분류됨에 반론은 없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인터랙션 디자인이란 플레이어와 플레이어, 플레이어와 시스템, 시스템과 시스템이 서로에 대하여 행동할 수 있는 허용된 동사와 허용되지 않는 동사의 집합을 만드는 의도적 행동으로 해석되고 학습되어야 한다.
러니어는 사람과 현실의 상호작용 양상을 서술할 때는 체언보다 용언이 적합하다고 설명한다. 주체가 되는 인물과 사물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주어와 목적어 역할을 하는 명사, 대명사, 수사보다 서술어 기능을 하는 동사, 조동사, 형용사 등 용언이 인터랙션의 핵심임을 강조한 것이다. 인간과 세계의 관계와 역학을 시뮬레이션하거나, 이상과 환상을 증강시켜 현실을 교란하는 게임 시스템의 심장은 다른 무엇도 아닌 ‘동사’ 임을 디지털 게임과 가상현실 분야의 개성 강한 개척자들이 함께 지지하고 있다. (몇번을 몇년을 보아도 이들의 용맹스런 개성만점 사진에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게임의 동사>를 탐구하는 작업을 언어학이나 문법 논의로 풀 생각은 없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동사’의 범주를 밝힐 필요가 있을 것이다. <모르는 게임> 연구자와 창작자는 다양한 관점에서 동사를 포섭하고 해체하고 해석할 것이며 상태 동사가 아닌 동작 동사에 초점을 맞추어 작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문법보다는 직관적인 의미 구분을 따를 것인데, 행위 완결에 따라 전환된 상황과 의미를 칭하는 상태 동사는 작용에 근접한 영역으로 보고 역동성과 현재성을 표현하는 동작 동사에 먼저 집중할 것이다.
예컨대, <동물의 숲>에서 나의 캐릭터 “뽀”는 살고 있는 섬을 탐험한다. 탐험하다는 동사로 정의할 수 있지만 <동숲>에서 탐험은 그 보다 한결 작고 구체적인 동작 동사 ‘줍다’, ‘걷다’, ‘먹다’, ‘달리다’, ‘오르다’, ‘때리다’ ‘파다’ 등의 조합을 통해 다양성과 역동성을 발생시킨다. 이에 이어지는 작업은 포괄적 행위가 아닌 동작 동사들을 기점으로 삼고자 한다.
게임과 플레이어는 서사 경험으로 연결되어 있다. 게임에 배경적, 이상적 서사를 심을 수 있어서 뿐 아니라 그런 것이 없다 해도 플레이어 스스로 의미를 구획하고 생성하며 인터랙션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서사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부족함은 있지만 적응된 보통 날을 살아가던 한 인물에게 예상치 않은 사건이 일어나고, 사건에 휘말린 자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깨진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어떤 행동들을 이어 나가는 것이 서사 경험의 기본 구조라면, 이것은 장대한 에픽의 MMORPG 뿐 아니라 단순해 보이는 3 매치 게임에서도 충분히 발생시킬 수 있다. 게임 디자이너를 일갈하는 크로퍼드의 질문 “플레이어는 무엇을 하는가? 동사는 무엇인가?” 는 사실, 시학에 피력된 스토리텔링의 법칙을 요약한 것으로 보아도 큰 틀림은 없을 것이다.
플레이어는 무엇을 하는가?
동사는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야기에 있어 캐릭터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캐릭터와 액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응당 액션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캐릭터의 성격도, 사건 전개와 변화도 모두 액션, 엄밀히는 동작 동사의 조합과 연속이 빚어낸 결과로 보아야 하며, 따라서 캐릭터가 처한 상황을 묘사하거나 유려한 대사를 쓰는 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액션 아이디어 구현을 위한 치밀하고 정교한 행동 구성이 한결 중요하다는 것이다. 명사는 사물과 사람을 대상으로 지시하고 존재를 언급한다. 반면, 동사는 행동을 말하고 사건을 발생시킨다. 이 관점에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풀이하는 좋은 이야기의 비밀은 작가와 디자이너가 동사적 사고에 몰두해 창조한 새로운 서사 경험을 뜻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놀이적, 서사적 경험을 촉발하는 인터랙션 매체로서 게임은 이제 단독성과 고유성으로 특징을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의 모든 매체와 맥락에 게임의 요소들이 적극적으로 침투하고 있다. 어느 시점까지 우리는 게임과 게임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었고, 게임 아닌 것이 게임의 특성을 차용하는 방향과 정도를 치열하게 다퉈 보기도 했다. 그러나 게임과 놀이 경험이 현실과 가상 세계를 이미 뒤섞고 있고, 혼합된 세계 전반의 지붕이 되거나 혹은 토양이 되고 있다면 무엇이 게임이고 아닌지를, 어떤 것이 전체이고 어디가 경계인지를 가르고 벼르는 것은 깊은 통찰이나 새로운 징후를 발견하는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신석기시대 보드 게임부터 오늘날 메타버스에 이르기까지 변한 적이 없었던 인터랙션 제1의 원리를 재확인하고, 자세히 해명하고, 한결 노련한 설계에 이바지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지금 우리들에게는 시급하고 중요한 실천임이 분명하다. 동사적 사고에 초점을 맞춰 플레이어 인터랙션을 살피는 것은 게임의 본령뿐 아니라, 앞으로 게임의 영향권에 놓이게 될 게임화 매체를 관통해 형식 층위의 인터페이스, 경험 영역의 놀이, 미학적 차원의 문화와 맥락을 개별 혹은 복합적으로 걸쳐 있는 여러 주제와 현상을 다룰 수 있도록 인도하리라. 명사로 환원되는 오브제 시스템으로도 게임, 게임화, 메타버스의 화려한 이상과 미래를 맛볼 수는 있다. 그러나 게임과 놀이의 생명력과 세상을 바꾸는 힘은 디자이너가 설계하고 플레이어가 실행하는 동사의 세계에서만 가능성과 지속성을 보증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의 동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소프트웨어와 인터랙션이 있는 제품을 정의하고 합당한 경험을 창조하는데 활용 가능한 원리와 의미를 밝히는 과정이기도 하다. 디자이너와 놀이꾼은 인지와 심리 차원에서 일어나는 손과 눈과 머리의 협업과 조정을 통해 미묘하게 같고 다른 동작과 그 동작이 표현하는 의미를 함께 만드는 인터랙션 파트너다. 디자이너는 빠르게 진화하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가상화 세계를 사람들이 지각하고 조작 가능한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행동 규칙을 만들고 플레이어는 규칙에 내포된 가능성에 기반하는 대응, 우회, 조합을 통해 각기 다른 경험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동사>는 '모르는 게임'의 동료들이 디자이너와 플레이어 사이를 오가는 또 다른 조력자로 역할하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하며 특정 동작 동사가 적용되는 공시적 상황과 맥락을 해명하고, 새로운 기술과 문화가 변화시키는 동사의 통시적 변화도 추적할 것이다. 동사가 매개하는 협력과 일탈, 저항과 적응의 세계를 탐험하고 더 넓고 풍성한 동사의 대륙을 개척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 <게임의 동사>의 핵심 목표다.
Reference
Crawford, C. (2013). Chris Crawfor on Interactive storytelling. 2nd Edition. Person Education. 최향숙 옮김. (2015). <크리스 크로퍼드의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한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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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erno, M. (2012). Aristotle's poetics for screenwriters: storytelling secrets from the greatest mind in Western civilization. Hachette books. 김윤철 옮김. (2008). <스토리텔링의 비밀: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 아우라.
Lanier, J. (2017). Dawn of the new everything: A journey through virtual reality. Random House. 노승영 옮김. (2018). <가상현실의 탄생>. 열린책들.
Rollefson, G. O. (1992). A Neolithic Game Board from ʿAin Ghazal, Jordan. Bulletin of the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286(1), 1-5.
Article Author & Member Profile
권보연은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겸임교수다. <SNS의 게임화>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토리 디자인과 서사 경험, 게임 싱킹, 내러티브 싱킹을 방법론으로 컨설팅, 교육, 창작을 병행한다. <게이미피케이션> (단독 2015), <게임 싱킹- 게임 디자이너처럼 생각하기> (단독, 2017), <SNS와 게이미피케이션> (단독, 2019), <뉴스 스토리텔링> (공저, 2020)를 저술했고 TRPG <안녕이라 하기 전에>, 시리아 난민 주제 인터랙티브 서사 <햇살 아래서> 메인 스토리 디자이너, <에란겔 다크투어> 메인 퍼포머로 활동했다. <디지털 게임에 나타난 미학의 정치>, <가상현실 시위의 사회적 미메시스 특성 연구>, <게임북의 서사 기반 게임화 전략>, <참여 연극의 놀이 전개 구성>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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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진은 한양대학교 에리카 한국언어문학과 겸임교수다. 주요 논문으로는 “컴퓨터게임과 유희자본주의”(2016), “공감장치로서의 VR”(2017)가 있다. <한국 테크노컬처 연대기>(공저, 2017),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금지된 것들의 작은 역사>(공저, 2018) <스노우캣>(단독, 2021)등을 집필했다. 한양대학교 에리카 교과목 ‘소프트웨어와 인문비평’을 개발하고 ‘기계비평’의 기획자로 활동해 왔다. 컴퓨터게임과 웹툰,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의 미학과 정치성을 연구하고 있다. 시리아 난민을 소재로 한 웹반응형 인터랙티브 스토리 <햇살 아래서>(2018)의 공동개발자이기도 하다. <에란겔: 다크투어>(2021) 연출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