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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ri Sep 15. 2015

A Walk to Remember

9월의 기억, remember September

 이런 우연이 있을까. 물론 계획되어 있던 이벤트라고 해도 그럴듯하다. 우리 가족의 생일은 전부 다 9월이다. 심지어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마저 9월이다. 9월은 나에게 있어서 축제가 가득한 풍요의 달이자, 그만큼 챙겨야 할 일들이 많아 지출이 많은 빈곤의 달이기도 하다. 9월이 주는 느낌이 더욱 특별하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저녁에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9월은, 내가 이 좋은 날 태어난게 정말 행운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다. 햇빛의 색감도 하얀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어 기분좋은 눈부심을 선사하는 9월. 영어로의 'September' 도 뭔가 가사에 끄적이기 좋은 어감을 주는 단어이다. -ber 로 시작되는 달들의 맏이이자 추워지는 계절로의 시작을 알리는 9월은, 시선이 닿는 곳 구석구석이 이쁨으로 반짝한다. 봄이 가진 화려한 이쁨과는 다르다. 9월의 이쁨이란, 지나치게 화려했던 여름의 색채들이 아득하게 파래진 하늘과 낮아진 공기의 온도로 절여진, 정확히 코스모스의 그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9월이 시작되기만 하면 사소한 느낌 하나하나가 그렇게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어릴 때부터 낭만을 따라다니는 카사노바의 기질이 다분했나보다. 유치원때부터 누구가를 좋아함에 있어서 예술가의 혼을 불태우듯 열정적이었던 걸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때의 어른의 기억력은 5살 꼬마때를 기억해 내려고 애쓰지만 잘 보이지 않는 지금의 내 기억력보다 더 선명하기에, 엄마의 증언은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증명하는데 한몫을 한다. 말도 안되는 엉터리 같은 작곡을 하고, 편지를 쓰고 시를 써서 그 누구에게 바쳤다고 한다. 이상하게 9월만 되면, 물론 생일이 있어서 였겠지만, 설레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어린마음이었다. 그것보다 조금 자라서의 나에게 9월은 항상, 반팔로는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선선함에 얇은 긴팔을 하나를 입고 그 천 한장 사이로 느껴지는 상대방과의 따스함의 교감이었다. 낯설게 느껴지는 서늘함에, 익숙한 서로의 체온을 찾게 되는 접촉의 짜릿함이다. 해질녘쯤 니트를 입고 그 서늘함이 누군가를 뒤에서 껴안아 포근함으로 물드는 느낌은 9월 고유의 것이다. 9월의 느낌은 나에겐 사랑의 느낌이었고, 누구나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사춘기에는 그것이 증폭되었다.

 처음 교복을 입게 되었을 때 팝송에 빠졌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가요에 대한 흥미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요즘 지인들과 노래방에 가면 90년대를 초토화시켰던 유행가들에 공감을 못한다. 얼마 전 한창 난리가 났었던 토토가에도 그냥 무덤덤했다. 그렇게 유행가에 관심이 없던 내가 팝송에 빠졌었다니 사춘기라서 그랬나보다. 지나가다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꽂히면 그 노래의 제목과 가수를 찾는데 몰두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을 스피커에 갖다 대면 노래를 알려주는 그런 시절이 아니었다. 순전히 인터넷으로 들었던 가사의 단어 몇 개를 입력해 검색하거나, 아무 노래나 무작위로 들으며 그 노래를 찾을 때까지 빨리감기 버튼을 눌러야 했다. 인터넷에도 그렇게 정보가 많지 않을 때이고 MP3도 갓 나오기 시작해서 카세트 테이프에 주로 의존하던 '나름' 클래식하던 시절이다. 그런식으로 브리트니 스피어스, 엔씽크, 백스트릿보이즈, 웨스트라이프를 알게 되었고 에이브릴라빈의 돌풍에 휘말려 정신 못차리기도 했다. M2M 이라는 여성듀오에 가슴이 말랑말랑해지기도 했으며 에반에센스의 음악에 영혼을 타락시키기도 했었다. 용돈을 받으면 죄다 카세트 테잎과 씨디를 사는데 쏟아 부었다. 꽂힌 노래가 특정한 노래였어도 그 가수의 앨범 전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수들도 변하는지라, 나는 그 첫인상에 반해서 좋아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에 그 모습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더라.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특히 그랬다. 3집부터 너무 외설적인 느낌을 주기 시작하면서 4집부터는 괜찮겠지 했는데 딱 거기까지였다. 에이브릴라빈도 1집을 무한반복하며 들으며 2집이 나오길 목빠지게 기다렸었다. 기대감이 너무 컸는지 2집은 그냥 들을만 했고 3집은 듣다 말았다.

 수많은 음악들을 흡수하던 나에게, 도입부의 기타 선율 하나로 나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노래가 나타났다. 마치 9월의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의 기타 선율 한마디. 거기까지만 들었었다. 그 선율 하나에 심장이 내려 앉았다. 뭔가 모를 미어짐이 가슴 바닥부터 한번에 휘감았다. 누구의 노래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첫 소절에 나온 'remember' 까지밖에 듣질 못했다. 한참 인터넷을 뒤져도 도저히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 노래가 나타났다. 무심코 티비를 들여다 보고 있는데 검은색 옷을 입은 여자의 뒤로 파란색 레이저 같은 빛들이 쏘아지는 그런 뮤직비디오였다. 그 영상 자체에서 관능적임을 느낀 순간, 가을바람이 다시 뺨을 스쳤다. 'A walk to remeber' 라는 영화의 주제곡이란다. 영화를 찾아보고, 소설이 원작이라 원서를 찾아읽고, 사운드트랙을 끊임없이 들었다.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분명, 그 영화의 스토리는 유치한 '청소년 멜로 영화' 였다. 그럼에도 불하구하고 그때는 그렇게 가슴이 미어졌었다. 나이가 들게 되면서 보게된 심오하고 훌륭한 영화들 보다도, 그 어느 로맨스 소설 보다도 뻔하고 유치한 내용의 이야기이지만 아직까지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남아있다. 감정이 울렁거리는 그때의 나에게 참 순수한 마음을 갖게해줘서, 글을 쓸 수 있는 감성적인 동기 부여해줘서,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담은 영화라서 그렇다. 특히 그 노래는, 정말이지 나에겐 코드진행이며 멜로디며 가사며 가수의 목소리며 너무나도 완벽한 노래이다. 하루 온종일 듣고 있어도 지겨움을 느낄 수가 없다. 매번 설레는 감정이 되살아나게 만드는 첫모습 그대로이다. 우스갯소리로 아침 알람소리로 어떤 노래로 설정을 하면 그 노래가 미치도록 싫어지게 된다는데 이 노래는 아침이라서 설레게 만드는 매력을 지녔다.

 이 노래 때문에 알게 된 영화 'A walk to remember'.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느낌을 아직까지도 처음 그때의 느낌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다. 분명, 사랑이라는건 정의내릴 수 없는 각자의 고유한 가치다. 나에게 사랑이란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그 마음이다. 9월의 햇살에 그사람이 생각나고, 9월의 바람에 그사람의 포옹이 느껴지는 것과 같은, 사랑은 그런 특별한 9월이다.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맥주 한잔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하지만 오늘같은 9월은 발목에 스치는 서늘한 바람이 자꾸만 그립다. 바깥 풍경에 그대로 멈춰서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또다시 그 시절 내 뺨을 만지고 지나가는 기타선율이다. 그리고는 그 사랑의 감정에 정말 '9월' 임을 느낀다.


 항상 변치않는 모습으로 자기 자신을 빛내는 9월같은 Mandy Moore 를 기억하며.

Mandy Moore-Cry (original soundtrack from 'A walk to remember')

https://youtu.be/R8Vss4laGZ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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