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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ri Sep 21. 2015

우울의 고임

불빛들이 반짝여서 다행이었다.

어찌되었건

그 불빛마저 나를 우울함으로 끌어들이고 있었지만

반짝여서 다행이었다.

한참을 걸었다.

수많은 가로등을

마주 부는 바람과 함께 뒤로 넘기며

검은 한강물을 넘었다.

낮보다는 밤을 선호했다.

시끄러움이 줄어든 검은 하늘은

이별의 아픔을 만끽하기 딱 좋은

그런 어두움이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나면

다시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럼에도 기분을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우울함은

도대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가느다란 선을 타고 넘어오는 노래는

흥을 철저히 차단한 이별노래들 뿐이었다.

아프지만 따스한 위로에 둘러싸여

회색의 상자 속으로 들어섰다.


잿빛의 도시는 추웠다.

그 속으로 한 걸음씩 발을 내딛으며

무채색으로 물들어 갔다.

추억과 잘 어울리는 흑백사진으로

천천히 걸었다.

높은 건물들로 둘러진 상자 속 바닥에

나의 시선이 고였고

그 시선을 따라

하나 둘

우울함을 흘려보냈다.

다른 사람들의 우울함이

같이 이렇게 고여 있는듯 하여

그 속에 한참을 몸 담그고 있었다.

집 현관문 앞에서부터 끌고 온 그림자를

한껏 이곳에 뿌리고 나면

도시는 참 매력적인 빛깔로

'이 정도면 괜찮아'

 하며 나를 꼬시기 시작하고

그렇게 잠깐 기분이 나아지면

내일은 괜찮을 거라고 믿어보며

젖은 몸으로 물을 뚝뚝 흘리며 돌아왔다.


뒤를 돌면 발 뒤꿈치까지 이어진 물자욱이

저 멀리는 말라서 흐릿하고

내 발꿈치 뒤만 이렇게 선명했다.

제자리에 멈춰 서면

또다시 회색 상자 바닥에 우울이 고여

검은색으로 젖어갔고

잠깐 반짝였던 내 마음은

또 새카맣게 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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