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들이 반짝여서 다행이었다.
어찌되었건
그 불빛마저 나를 우울함으로 끌어들이고 있었지만
반짝여서 다행이었다.
한참을 걸었다.
수많은 가로등을
마주 부는 바람과 함께 뒤로 넘기며
검은 한강물을 넘었다.
낮보다는 밤을 선호했다.
시끄러움이 줄어든 검은 하늘은
이별의 아픔을 만끽하기 딱 좋은
그런 어두움이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나면
다시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그럼에도 기분을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우울함은
도대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가느다란 선을 타고 넘어오는 노래는
흥을 철저히 차단한 이별노래들 뿐이었다.
아프지만 따스한 위로에 둘러싸여
회색의 상자 속으로 들어섰다.
잿빛의 도시는 추웠다.
그 속으로 한 걸음씩 발을 내딛으며
무채색으로 물들어 갔다.
추억과 잘 어울리는 흑백사진으로
천천히 걸었다.
높은 건물들로 둘러진 상자 속 바닥에
나의 시선이 고였고
그 시선을 따라
하나 둘
우울함을 흘려보냈다.
다른 사람들의 우울함이
같이 이렇게 고여 있는듯 하여
그 속에 한참을 몸 담그고 있었다.
집 현관문 앞에서부터 끌고 온 그림자를
한껏 이곳에 뿌리고 나면
도시는 참 매력적인 빛깔로
'이 정도면 괜찮아'
하며 나를 꼬시기 시작하고
그렇게 잠깐 기분이 나아지면
내일은 괜찮을 거라고 믿어보며
젖은 몸으로 물을 뚝뚝 흘리며 돌아왔다.
뒤를 돌면 발 뒤꿈치까지 이어진 물자욱이
저 멀리는 말라서 흐릿하고
내 발꿈치 뒤만 이렇게 선명했다.
제자리에 멈춰 서면
또다시 회색 상자 바닥에 우울이 고여
검은색으로 젖어갔고
잠깐 반짝였던 내 마음은
또 새카맣게 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