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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Jan 27. 2022

이야기보따리 비우기

That's what friends are for

    아주 뚱뚱해진 이야기보따리의 주둥이를 확 풀어서 탈탈 비운 다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슬퍼했고, 친구는 화를 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시간들이었다. 친구는 주변 사람들 중 하나의 목표를 보고 달려가 기어이 그것을 성취해 낸 사람을 나 말고는 별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기자가 됐을 때 무척 뿌듯했다고 했다. 그래서 거세게 파도가 치는 바닷가에서 원치 않게 조금씩 깎여 나가 결국에는 반들반들해진 바위를 보는 것처럼, "이제 기자 그만하고 싶어", "이제 기자 안 해도 될 것 같아"라고 말하는 나를 보는 것이 무척 속상하다고 했다. 어쨌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다만 집단이 됐든 조직이 됐든 사람이 됐든 아무도 나에게 기대를 하라고 한 적이 없으니, 기대한 만큼의 실망을 끌어안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라 하겠다. 여태까지 그랬듯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 수도 있고, 큰 변화를 꾀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많이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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