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과 경영을 하지 않는 언론사들
경제지가 아닌, 흔히 종합지라고 일컬어지는 매체에서 주니어 기자들이 경제·산업부를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는 단적인 예가 하나 있다. 물론 안 그런 경우도 있을 수는 있는데, 대개의 경우 펜 끝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언론사에 입성하는 주니어 기자들은 정치·사회부야말로 참된 기자가 몸 담아야 할 부서라고 여기고는 한다. 수습기자들이 수습 기간을 끝마치고 적어 내는 지망 부서의 상위권에도 으레 정치·사회부가 있다.
그러다 보니 첫 부서 발령을 정치·사회부로 받지 못한 수습기자들은 어떤 종류의 열패감마저도 느낀다. 나도 그랬었다. 캡과 바이스, 일진 선배들의 눈에 들고 싶어서 하루에 한두 시간밖에 못 자는 상황에서도 몸이 부서져라 뛰어다니곤 했었는데, 대체 뭐가 부족했을까? 단독 거리를 많이 물어 오지 못해서였을까?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지금에야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한 수습기자들에게는 "네가 잘 못한 것 아니야?"라는 말이 진리처럼 들리게 마련이다.
막내가 과거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때는, 불필요한 생각을 하게 만든 치들에게 화가 나서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우리 막내는 기사도 예쁘게 잘 쓰고 취재도 자신 있게 잘하고 일하는 센스가 있는 데다 배움에도 열의가 넘치고 싹싹하기까지 해서 내가 참 예뻐라 하는데, 그런 우리 막내를 쓸데없이 울적하게 만들다니. 그때는 부장이 얼마나 사람 보는 눈이 까다로운 분인지, 막내가 자기 몫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만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며 달래느라 경제·산업부의 장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해 주지 못했었다.
뻔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경제·산업부의 장점은 기업과 돈의 생리에 대해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곳이라는 데 있다. 최근에는 출입처를 옮기고 난 뒤 새로운 업계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그들이 해준 이야기를 내가 몸담은 업계의 현실과 여러모로 연관 지어 깊게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이런 인사이트는 계속 정치·사회부에만 있었더라면 아마도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유통업계에 출입하고 있으니 이쪽 업계에 국한해서 이야기해 보자면, 어차피 어느 기업이나 플랫폼이 됐든 파는 물건은 다 거기서 거기다.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에게 얼마나 편리하고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지가 고객을 끌어들이는 관건이 된다. 어떤 면에서는 기자들이 '깔보는' 기업이야말로 이런 문제에 대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집단이다.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들이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영입하는 데 그렇게 공을 들이고, 업계에서 이름난 경영자를 선임하는 데 그렇게 열심인 것이다.
몇몇 언론사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언론사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실은 '판매'라고 썼다가 고쳐 적었다. 콘텐츠가 포털을 통해 무료로 제공되고 신문의 판매부수는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진정으로 콘텐츠를 통해 성장하고 생존하는 기업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다. 자생 능력이 없으니 기업들로부터 '삥을 뜯으며' 연명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삥을 많이 뜯기 위해 소위 '매체력' 내지는 '영향력'을 입증하는 근거로 들이미는 것이 PV다. 그 PV를 위해 클릭 수를 높일 수 있는 저질 기사를 양산하도록 독려하고(윽박지른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기자들은 자괴감에 치를 떨면서도 저질 기사를 쏟아낸다. 이 땅에는 기레기밖에 없냐고 짐짓 개탄하는 독자들도 그런 저질 기사를 좋아한다.
저질 기사만큼이나 좋은 기사도 많다. 훌륭한 콘텐츠야말로 진정한 힘이라는 말은 인이 박이도록 들었다. 동의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기업들이 좋은 물건과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유효하게 가 닿도록 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언론사와 기자들은 뭘 했을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비슷할 것 같다.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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