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족 혐오와 동지애 사이의 그 어드메
남자친구(기자 아님)가 나이 많은 지인에게 '기자를 만난다'라고 말했더니, 지인이 "똑똑한 여자는 만나면 안 돼!"라면서 학을 떼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웃었다. 예전에 누군가 소개팅을 주선해 주겠다면서 "기자인데 괜찮아?"라는 말부터 꺼냈던 일도 있었고, 기자를 만나기 싫은 건 나도 매한가지이긴 하다는 생각까지 이른 게 웃겨서 아무렇게나 써 본다.
기자끼리 만나는 커플을 보통 '기기 커플'이라고 하고, 주변에서 종종 찾아볼 수도 있는데, 정작 "같은 기자와 연애를 할 의사가 있는가?"라는 화제가 오르면 성별을 막론하고 질색 팔색을 하곤 한다. "조선시대 노비들끼리 눈 맞아서 결혼하는 것하고 뭐가 달라?"라고 자조적으로 말할 때도 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무척 멋지고 올바른 사람들이 없지도 않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전우애 이상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다. 그러니까 풀어서 말하면, 어떤 부조리를 헤치며 이 X 같은 밥벌이를 하고 있는지 피차 무척 잘 알고, 만나면 회사 욕이나 상사 욕, 가끔은 출입처 욕을 하면서 카타르시스 대잔치를 벌이느라 애틋함이 피어오를 틈이 없다. 그러니까 "왜 기기 커플이 싫은가?"라는 질문에 가장 자주 끌려 나오는 이유인 "같은 직종이기 때문에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신비감이 없다"도 영 번짓수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동족 혐오라는 요소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언론과 기자가 일상적으로 조롱을 당하는 시대에, 이 돈 안 되고 욕만 들입다 먹는 직업을 택한 멍청이들(그렇다, 이것은 자학이다)은 제각기 어떤 단단한 신념을 가지고 이 바닥에 뛰어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아가 강할 수밖에 없으니 그것을 쉽사리 굽히지 않으리라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 사람들끼리 굳이 만나서 만사에 불꽃을 튀기느니 차라리 피해 버리자는 마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기기 커플이 넓은 의미에서 CC와 다를 바 없다는 것도 리스크다. 출입처만 같으면 같은 회사 사람보다는 다른 회사 사람과 더 친하게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직도 잦아서, 자칫 잘못하면 전 애인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지 않으려면 애초에 기자끼리는 만나는 게 아니다"라는 격언 아닌 격언도 있을 정도다. 실제로 내가 아는 부부는 청첩장을 돌릴 때까지 아무도 둘이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도 했다.
이 모든 장애물과 격무, 고난 속에서도 기자들 사이에 애정이 피어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건너 건너 전해 들은 사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수습기자들이 꾸미를 만들어 거의 하루종일 붙어서 일을 하다가 같은 꾸미원 둘이 눈이 맞아 일찍이 결혼에까지 이른 것이었다. 떼꾼하고 꾀죄죄하기 이를 데 없는 수습기자들 사이에서 사랑이 꽃피었다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