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6일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책상 위로 오른손을 척 내보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저 손가락 많이 나았어요!" 의사 선생님은 눈썹을 조금 치켜뜨고 할 말을 고르는 듯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왜, 좀 더 뜯지?" 잠깐 당황하다가 의사 선생님이 익숙한 환자에게 나름대로 농담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웃었고, 여느 때처럼 농담 따먹기만 했다. 유감스럽게도 약을 줄인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업무 환경이 바뀌면서 고질적인 불안 증세가 갑자기 심해진 이력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치료 일기를 쓴 지도 일 년이 다 돼 간다. 다음 달 초쯤이면 벌써 병원 문턱을 다시 밟은 지도 일 년이 된다. 병원을 찾는 내 옷차림이 작년 이맘때와 비슷해졌음을 발견하고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실감한다. 결국 나도 다른 우울증 재발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최소 치료 기간 일 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몇 달 전 진료 시간마다 '하산'이라는 단어가 오가고 병세에 잠깐 차도가 보일 때까지만 해도 나만은 특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약을 먹든, 먹지 않든, 감정 기복은 별로 크지 않다. 심지어 이번에는 맨 땅에 헤딩을 하다가 이마가 깨져서 피투성이가 될 것이 확연히 보이는 얼렁뚱땅 TF에 차출돼 파견을 나와 있는데도 그다지 동요를 느끼지 않았다. '이 회사가 하는 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라고 쓴웃음을 짓고 말았을 뿐이다. 이미 전례가 있으니 거의 다 낫고 있다고 속단은 하지 않겠다. 다만 바라건대 내가 어떤 파도를 맞닥뜨리더라도 금방 넘어졌다가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는 탄력성을 단단히 쥐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진료 말미에 이 말을 몇 번 더 해야 병원에 그만 다닐 수 있을까. "아무튼 요는, 이번에도 별일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