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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이고 둥글어져도 돌은 돌이다

그냥 그렇게 생겨 먹어서

by 보현

나라고 왜 모든 직장인에게 찾아든다는 '3·5·7 신드롬'을 겪지 않았겠는가. 정확히는 7년차쯤부터 이 직업에 대한 열망과 애정, 헌신보다는 회의감이 더 커졌던 것 같다. 나는 '경제 바보' 소리를 들을 정도로 돈이 돌아가는 흐름을 보는 눈이 어둡지만, 소위 '매출 부서'라는 곳에 들어가 보니 이 업계가 어떤 식으로 아슬아슬하게 연명하고 있는지를 직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한 말로 자체 수익 모델 없이 그냥 어딘가에 기생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몇 년이 더 지나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차장을 달아야 할 테고, 그 위태로운 판에 뛰어들어 선배들이 하던 일을 그대로 해야 한다. 기자로서의 롤 모델이 보이지 않았다. '잘 되면 부장, 더 잘 돼야 국장'이라는 말을 그냥 웃어 넘기기 힘들어졌을 때부터 '탈출'을 고민했고, 해가 갈수록 그저 그런 기자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런 내게 한 줌 정도 남은 시시한 정의감 비슷한 무엇이 "기자 안 할 거야? 이래도? 이래도?"라며 잊을 만할 때쯤 자꾸 내 발목께를 툭툭 건드린다는 게 내 머리를 아프게 한다.


남자친구는 이제 더 이상 내게 기업 채용공고를 보내며 거기서 얼른 빠져나오라고 닦달하지 않는다. 남자친구의 인상평을 빌리자면, 기자는 대체로 '약까지 먹어 가면서 나라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고, 나도 그냥 그렇게 생겨 먹었다. 10년 전보다는 덜 완고해졌지만, 비바람을 맞아 가며 깎이고 둥글어지더라도 돌은 돌이다. 나는 여전히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잘 되든 안 되든 그 신념과 삶의 방향을 일치시키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편집 방향 없이 조회수만 보고 내달리는 회사가 소박한 삶의 자세를 지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는다는 건 개탄할 만한 일이나, 그래도 어쨌든 기자는 나 같은 사람이 가장 할 만한 일이긴 한 것 같다. 심약하고 돌파력이 부족해서 다른 좋은 기자들처럼 아픈 기사를 써내지는 못하더라도, 어쨌든 묵묵히 일하고 있으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힘을 보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그 한순간을 위해 버티는 것이나 다름없다. 남자친구는 "그래서 누나를 좋아해"라고 말했다. 기대에 부끄럽지 않게 일해야 할 텐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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