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현 Jun 26. 2024

"신부님, 정말 아름다우세요!"

기나긴 공주놀이의 여정 속에서 자아를 잃지 않기

    대한민국의 법제도가 보호하는 부부의 지위를 취득하기 위해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 뒤로 7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 예비 배우자와 대강 합의한 바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중요도를 따졌을 때 혼인신고와 결혼식은 3대 7 정도의 비율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자는 본식에서 피로연까지 대략 1~2시간이 소요되는 결혼식만이 아니라, 대체로 공장에서 찍어내듯 하는 단 한 번의 행사를 준비하는 모든 기간을 이른다. 기혼자들이 종종 "결혼 준비하면서 다투지는 않아?"라고 애정과 염려를 섞어 묻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결혼 과정에서 다툼을 일으킬 만한 요소들을 자의든 타의든 꽤 쳐낼 수 있었기 때문에 큰 마찰을 빚지 않고 일정과 의견을 맞춰 나가는 편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정상성이란 무엇인지, 부부란 무엇이고 가족이란 또 무엇인지, 결혼 준비 과정이 내게 던지는 여러 가지 질문들로 생각할 시간이 많았지만, 최근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건의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먼저 기록해 놓으려 한다. 아무래도 통상적인 결혼 준비의 정수라고 한다면 신부 드레스를 고르는 일을 꼽을 수 있겠는데, 하필이면 이게 또 평소 내 가치관과 배치되는 부분이 많은지라 걱정이 컸다. 내가 평생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화려하고 비현실적인 장소에서 느끼한 포즈를 취하며 예쁜 척 사진을 찍는 일이 죽을 만큼 싫었기 때문에 스튜디오가 아닌 노상에서 원피스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웨딩촬영을 했고, 그 덕에 드레스 실물을 최근에야 접하게 되었는데, 내 우려는 일정 부분 현실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내 외모에 별로 불만이 없다. 그렇다기보다는 기능성 외의 것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헬스장에서 적절한 부위에 올바른 자세로 자극을 주어 근육을 키우고, 나쁜 습관 때문에 비뚤어져 부적절한 부하를 주는 신체 이곳저곳을 교정하고, 식후에 숨이 차도록 몸을 움직여 혈당을 낮추는 일이 더 중요하다. 화장도 하지 않고 여름에 접어들어서야 선크림만 바르고 같은 옷들을 대충 돌려 입으며 출근한다. 키가 작은 것이 가끔은 불편하지만, 키를 포함해 사지와 허리의 굵기라든지, 이목구비의 모양이라든지, 어쨌든 바꿀 수 없는 것에 사로잡혀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별로 없다. 그런 내게 신체 이모저모를 조각내어 품평을 당하는 일은 꽤나 생경하기만 했다.


    물론 결혼 산업에서 소비의 주체는 대체로 신부인 만큼 업계 종사자들은 신부의 기분이 날아오르도록 하기 위해 온갖 접객 기술을 동원한다. 그 과정에서 신부는, 대체로 '긍정적인' 방향의 이야기들이지만, 외모에 대한 평가를 넘치도록 듣게 된다. 소위 '썸' 단계에서 예비 배우자가 서운해했을 정도로 '외모 관리'와는 담을 쌓고 지낸 나조차도 어깨가 절로 으쓱해질 정도다. 이를테면 나는 메이크업 샵과 드레스 투어 중 방문한 드레스 샵에서 얼굴형, 어깨에서 목을 타고 올라가는 선이 곱고 예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이런 것은 아무나 입을 수 없다"는 호들갑은 덤이다. 나는 휘어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평평하게 다물며 칭찬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으려 무척 애썼다. 여기서 중심을 잡지 않는다면 나 아닌 불특정 다수의 눈에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외모에 집착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강력한 확신이 들었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웅진지식하우스, 2017)는 아름다움이라는 단 하나의 평가 기준에 저울질되는 여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강박에 시달리며 고통을 받고 자아를 잃어 가는지를 설명한다. 자기 확신이 단단한 사람조차도 일상적인 평가에 노출되면 자연스럽게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내가 머리카락 끝부터 발끝까지 나의 외견을 뜯어보았던 시간은 단 하루, 고작 세 시간가량이었지만, 내가 일주일 동안 거울을 보는 시간보다도 훨씬 긴 시간이었다. 환한 조명 아래 커다란 전신거울과 "신부님, 정말 아름다우세요!"라는 칭찬에 둘러싸인 채 무겁고 반짝거리는 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을 질리도록 바라보면서, 이 기나긴 공주놀이의 여정이 끝나기 전은 물론 끝난 뒤에도 자아를 잃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젊음은 찬란하지만 짧고 인생은 길다. 나는 기사를 잘 쓰고 취재를 잘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사람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작은 애벌레에 대한 연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