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로그 봐줄 때까지 숨 참음
한동안 클래식 음악 감상에 소홀했다. 그보다는 아예 관심을 끊고 있었다는 쪽이 정확하겠다. 고백하자면 금요일 퇴근 직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내게 주어진 무한한 자유의 시간에는 대체로 예비 배우자와 찰싹 붙어 식도락을 즐기거나, 위장에 도수 높은 알코올을 퍼붓거나, OTT 플랫폼이 무한정 제공하는 영상 콘텐츠의 바다에서 허우적댔다. 가끔, 정말이지 아주 가끔, 도무지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문장이 인지 체계를 스쳐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우울감이나 분노 같은 달갑잖은 감정에 잡아먹히고 싶지 않을 때만 가끔 바흐와 비발디를 들으며 시냅스를 차곡차곡 정리했다. 새로운 취향을 개척할 의욕이 나지 않았다.
얼마 전, 나를 납작한 인간으로 만든 주범 중 하나인 유튜브 알고리즘이 간만에 힘을 냈다. 머리숱이 풍성하고 멀쩡하게 생긴 젊은 남성이 얼굴 전체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작곡가의 탁월함을 구독자에게 설파하는 내용의 클립을 띄웠다. 이것은 내가 영상을 보기도 전에 파악한 정보이다. 온갖 '어그로'를 끌며 한 명에게라도 더 호기심을 자아내고자 하는 알록달록한 '유튜브 스타일'의 썸네일이 아니었는데, 놀랍게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4분 47초 동안 양질의 고전음악 강의를 돈도 안 내고 날로 먹은 사람이 됐다.
덕분에 '달빛'밖에는 모르던 나도 드뷔시 영업당했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리고 채널의 '떡상'을 간절히 기도하며 문제의 클립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