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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외로워서 그래

내란 재판 단상

by 보현

서울법원종합청사는 1989년 9월 준공됐다. 구석진 곳의 여자 화장실에 가끔 쥐가 출몰한다는 소문이 돌고, 오늘은 복도 한복판에 짓밟혀 죽어 있는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까지 목격했을 정도로 나이가 많은 건물이다. 법원 기자실은 출입구 가까이에 있는데, 차음이 잘 되는 새시가 설치된 것도 아닌 데다 독서실만큼이나 조용해서 세간의 주목을 받는 재판이 열릴 때마다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소음을 흠뻑 뒤집어써야 한다.(다행히 법정으로 들어가면 하나도 안 들린다) 끔찍하게도 요즘은 소음을 견뎌야만 하는 날이 일주일 간격으로 찾아온다. 주의가 흐트러지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이어폰을 꽂는 것을 정말 싫어하지만 도리가 없다. 이름을 연호하는 것까지는 통상 범위 내에 있다고 쳐도, 누군가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애국가를 잇따라 성악 창법으로 부르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유튜브에서 스타벅스 매장 플레이리스트를 찾아서 틀어 놓고 꾸역꾸역 일을 하고 있자니 능률이 평소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럴 때마다 몇 달 전 건물 뒤편 흡연구역 근처에서 보았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린다. 중년 여성 서너 명이 눈이 아플 정도로 짙은 원색의 옷을 똑같이 맞춰 입고는, 공연장 앞에서 개당 천 원쯤에 팔 듯한 싸구려 응원봉을 든 채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이윽고 그들이 기다리던 피고인이 재판을 마치고는 차량에 올라탄 채 열린 창문으로 손을 흔들며 스쳐 지나갔다. 까르르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던 여성들은 차량이 가는 길을 한참 동안이나 배웅한 뒤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를 진지하게 토론하며 멀어져 갔다. 아마도 그들은 재판이 있는 날마다 출입구 앞에서 목 터지게 소리를 질러 대던, 그리하여 법원 공무원들에 더해 법원 기자들까지 노이로제에 시달리게 하던 일군의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었을 것이다. 나로서는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지만, 꼭 팬클럽 오프라인 활동이 끝나고 활발한 기분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처럼 보여서 기분이 묘했다.


그러니까 이게 다 외로워서 그런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하며 도시락과 간식을 나눠 먹을 수 있는 친구들을, 별 것 아닌 일로 수다를 떨며 낄낄댈 수 있는 마음 맞는 친구들을 여기서밖에 만날 수 없어서 그런 것이다. 아마도 그들의 자녀나 배우자, 또 다른 친구들은 정치인 한 명에게 목숨을 걸며 울고 웃는 그들에게 핀잔을 주어 무안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다 외로워서 그런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법원 동문에서 피켓을 들고 횡단보도 신호가 바뀔 때마다 고래고래 구호를 외치는 사람을, 어버이날에 아크로비스타 앞에 카네이션을 꽂는 사람들을, 법원 출구 바리케이드 너머에 우뚝 서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우렁차게 부르는 사람을 가슴으로 이해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물론……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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