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사회적 규칙이 있다
어제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대통령 후보 한 명이 토론회에서 했던 말 때문에 그야말로 난리가 나 있었다. 대체 뭔가 싶어서 뉴스를 대충 훑었다. 일단 불특정 다수의 유권자와 미래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송출되는, 대통령 후보들이 공식적으로 정견을 내보일 수 있도록 선거관리위원회와 공중파 방송사들이 꾸린, 그보다 더 공적일 수 없는 자리에서 나왔다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천박하고 폭력적인 어휘에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도무지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질문 대상이 아닌 다른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그 말을 했다는 것을 나중에 가서야 힘들게 이해했다.
하루 종일 성명문이 거의 폭발하듯 쏟아졌다. 당연한 일이다. 나부터가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어서 두 번 다시는 그 대목을 보지도, 듣지도, 읽지도 않았고 입에도 올리지 않았으니까. 어떤 느낌이냐 하면, 변변한 사회적 교류도 없이 자신과 세상을 모두 저주하며 어떻게 하면 남들도 나처럼 인생이 망할 수 있을지를 끝없이 고민한 끝에 그저 밤새워 온라인 게시판에 몇백 개의 글과 댓글을 쓰고 말꼬리를 잡는, 그런 하류인생 언저리 인간을 엑기스화해 만 명쯤 뭉쳐 놓은 것만 같았다. 모니터 너머로 그런 부류를 언뜻 접했을 때는 그저 이맛살을 찌푸리고 '뒤로 가기'를 눌러 피할 수 있는데, 이토록 폭력적인 방식으로 물화되다니.
정작 당사자는 자신에게 향하는 비판을 '린치'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러면서 대충 "나는 성폭력적 함의가 있는 특정 표현의 발화에 문제가 있다고 하고 싶었을 뿐이고, 그것을 돌려 말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와 같은 표현을 썼을 뿐, 잘못하지 않았다"는 변명을 염불처럼 외고 있다. 속마음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그의 말과 행동을 보고 판단할 뿐이다. 하지만 나로서도 수많은 말을 고르고 고른 끝에 하나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우리는 인간 종으로 태어나 사회를 이루어 살아왔고, 그 과정에서 확립된 규칙이 여러 가지 있다. 설령 그 자신이 문제의 발언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맞는 말을 모든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뱉지 않는 것은 우리가 서로를 공격하고 죽이지 않기 위해 수백, 수천 년에 걸쳐 쌓아 올린 사회적 규칙이다.
이른바 '팩트 지상주의자'와 같은 그런 태도조차,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정치·사회적으로 과대 대표되고 있는 일부 집단의 모습과 무척 닮아 있다. 이것을 시작으로, 왜 그라는 인간 자체를 무척 경멸하는지에 대해 필리버스터 하듯 몇 시간이고 떠들 수 있지만, 그건 나와 (생리적인) 혐오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소수의 가까운 친구들하고나 나누겠다. 다만 이렇게 말하겠다. 미래에 대한 어떤 청사진도 없이, 그저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자 모두의 이웃을 잘게 채 썰어 일일이 적대시하는 방식으로 얕디 얕은 공감대를 얻고, 그리하여 그 개인의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시도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정치는 이해관계의 조정'이라는 정치학개론 수준의 인지조차도 없는 자를 더는 '유력 정치인'으로 대우해서는 안 된다.
오래전부터 이렇게 역설해 왔는데, 밑바닥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활짝 펼쳐 보인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출입처에서 나오는 성명문을 다 받아서 쓰지는 않지만, 정말 오랜만에 한 자 한 자 진심을 담아서 꾹꾹 눌러썼다. 알아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쓰지는 않았다. 그 기사가 가 닿아야 할 사람은 발화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