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엉덩이를 쫓아다니는 사람, 그 후
언젠가 판사 사무실에 볼일을 보러 찾아갔다가 머릿속을 맴맴 도는 말을 참지 못하고 뱉어 버렸던 적이 있었다.
"판사님은 사람이 싫지 않으세요? 사람이 싫어질 때는 어떻게 하세요?"
그는 질문을 받고 잠시 당황하다가 곧 평소의 그답게 차분히 답해 주었다. 기자들은 판결문만 보지만 판사들은 방대한 기록을 함께 보기 때문에, 인면수심의 범죄자라 할지라도 그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라 왔는지, 또 무슨 일을 겪으며 살았는지도 모두 들여다볼 수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판결을 내리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적어도 시시때때로 발작하듯 찾아오는 인간 혐오로 머리를 쥐어뜯는 나와 달리 부정적인 감정에서 건강하게 거리를 둘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간이 너무 싫다고 비명처럼 외치는 한편으로는, 나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겨누는 비아냥거림에도 공감하는 편이었다. 그렇게 인간이 싫으면 인간으로 태어난 스스로의 목숨을 깔끔하게 끊어서 사회와 자연과 우주에 이바지하라는, 뭐 그런 종류의 말들. 다만 내 삶의 장기 목표 중 하나가 자조 기능을 최대한 유지하며 살다 언젠가 오랜 시간 뒤 주어진 수명이 다해 잠자듯이 죽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연연하지 말자'는 평소의 기조에 다시 한번 주목해 괴리를 해소해 보고자 했다.
불자 집안에서 태어났으므로 불교가 친숙해서, 처음에는 밤낮으로 법륜스님 설법과 천수경, 반야심경, 금강경을 번갈아 들었지만 어딘지 부족했다. 그 무렵 우연히 본격적으로 탐조를 시작했다. 그저 태어났기 때문에 묵묵히 살아가는 새들을 오랫동안 관찰하며 자연스럽게 인간의 삶을 동물의 범주에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늘었다. 인간은 동물이다. 나는 인간이다. 그리고 나는 동물이다.
그러면 꽤 많은 것들이 간단해졌다. 가진 능력이라고는 없이 손바닥 비비는 기술 하나로 구멍가게 같은 언론사에서 악착같이 위로 기어 올라가려 애쓰며 일선 기자들을 감정 없는 장기짝 취급하는 괴물들이나,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호통을 치며 온갖 핑계로 수사와 재판에 불응하려 애쓰는 친위 쿠데타의 주범이나,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거 동포들이 당했던 인종청소를 힘없고 약한 소수민족에게 자행하는 정치인이나, 세상의 왕 노릇을 하려 들며 자신의 말 한마디마다 각종 경제 지표가 요동치는 것을 즐기는 나르시시스트 대통령도 얼추 건조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싫고 싫어서 참을 수 없는 인간 개개인이 아니라 인류라는 한 덩어리를 묶어서 보면 경이로운 지점이 많다. 털도 없고 날카로운 송곳니나 발톱도 없고 날개도 없고 썩 빠르지도 않은 주제에, 다른 비인간 동물보다 아주 약간 높은 지능, 언어와 문자라는 복잡한 의사소통 능력, 지구력, 무리 생활 등을 바탕으로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각종 물질적·비물질적 도구를 만들어내고 불과 오만 년만에 빠르게 번성했다. 누군가는 아직도 누군가를 죽이고 짓밟으려 눈에 핏줄을 시뻘겋게 세우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을 덜 하기 위해, 그리고 남들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주 먼 옛날 내 조상은 꼭 나 같았을 것이다. 돌다리를 천 번 두드리고도 의심이 가시지 않아 결국 개울을 건너지 않는 사람. 작고, 마르고, 약하고, 그래서 분쟁과 다툼을 싫어하고, 바깥이 너무 무서워서 대체로 동굴 가장 깊은 곳에 처박혀 있고, 무리에서 배척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생존에 꼭 필요한 시간 외에는 줄곧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데 몰두하는 사람. 그럼에도 내 조상과 그 후손들의 유전자는 인류라는 종, 인간의 공동체가 존속하는 데 필요했기 때문에 오만 년 뒤 지금, 서기 2025년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조상들은 무엇을 해 왔을까. 싸움이 무서웠던 내 조상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려 드는 공동체 구성원 일부를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만류하며 일종의 브레이크 역할을 했다는 상상을 해 본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 일을 업으로 삼는 것이 그렇게 괴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부침도 있었고 방황도 많이 했지만, 역시 나는 이 일을 좋아한다. 그리고 글쓰기를 좋아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가 닿지는 않겠지만, 누군가는 내가 쓰는 기사와 글을 보고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냥 난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앞으로도 이렇게 살면 된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최대한 불필요하게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도록 애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