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너무나도 많은 음식들

그렇게나 많이 필요한가요

by 보현

미국 상호관세 협상 막전막후를 다룬 기사들이 오후에 워싱턴 특파원발로 쏟아졌다. 사람 생각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한국 협상대표단의 기자회견 발언에서 발췌해 부각하는 부분이 엇비슷했다. 상호관세 시한을 불과 며칠밖에 남겨 두지 않은 상황에서 협상대표단이 짧지만 무수한 고민 끝에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만나러 스코틀랜드까지 쫓아갔고,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흉내를 내면서 면담 예행연습을 했고, 러트닉 장관이 대표단에게 "복잡하게 설명해서는 안 된다. 가급적 이해하기 쉽고 단순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라며 '꿀팁'을 줬다는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차오르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남의 돈 벌기 힘들다. 땅보다 하늘이 더 가까운 정부서울청사 고층에서 빨간 카펫을 밟으며 VIP용 금색 엘리베이터와 관용차를 타고 움직이는, 나랏돈을 받는 고위공무원단이라고 다를 것 없다. 아마도 어깨에 지고 있는 것들이 내 것들보다야 훨씬 커다랗고 무거웠을 것이다. "내 세금으로 월급 받는 주제에!"라든지 "누가 공무원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 같은 흰소리를 듣기 일쑤에, 작고 소중한 월급으로 공과금 내고 대출금 갚고 자녀 교육비를 쪼개어 쓰는 생활인이기도 할, 대표단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좌했을 일선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며칠, 몇 주간 내 머리를 터뜨릴 것처럼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잡스러운 생각과 고민이 다 보잘것없는 것처럼 여겨져서 힘이 솟았다.


특히 국내 언론에서는 공통적으로, 대표단이 어떻게든 쌀과 소고기 시장을 지켜냈다는 데 가점을 주는 모양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에서 과잉진압으로 이곳저곳이 깨져 피를 철철 흘리고 실신한 시민들, 광화문광장 명박산성 앞에 촛불을 들고 모인 백만 명 시민들의 생생한 모습을 들이밀어 한국 측 입장의 설득력을 높였다는 것이 공식 발언이고, 아직 확인해 보지 못한 내용으로는 이런 게 있었다. 굳이 시장 개방을 하지 않더라도 이미 미국산 소고기를 많이 먹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로서도 힘을 뺄 필요가 없었다 카더라, 하는 이야기들.


실제로 미국육류수출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소고기 수입량 46만 1027톤 중 48.1% 비중을 미국산이 차지했다고는 한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고형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는 영아 인구를 제외하더라도, 섭취 가능한 국민 1명당 미국산 소고기를 1년에 평균 4.3㎏씩 소비한 셈이다. 소고기 1인분을 150g으로 가정한다면 인당 약 29인분을 먹은 셈이 된다.


자, 여기부터가 본론이다. 국익이라든지 뭐 이런 것들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그냥 개인적인 감상이다. 구체적으로는 '먹보의 민족', '맛잘알', '쩝쩝박사'들이 맛있는 미국산 소고기를 아주 많이 먹어서 결과적으로는 축산 농가의 목숨줄을 사수할 수 있었다는 사소한 농담에 관한 것이다. 저 농담을 접하자마자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를 이런 식으로 합리화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는 생각에, 거의 반사적이다시피 한 속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도 육고기 먹는다. 살점만 먹는 게 아니라 선지도 먹고, 껍질도 먹고, 내장도 먹고, 가끔은 뼛골을 우린 육수도 먹고,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고 좋아한다. 계란도 먹고, 생선도 먹고, 우유도 먹고, 요즘은 당분 섭취를 자제하고 있어서 빈도가 아주 작긴 하지만 가끔은 꿀도 먹는다. 하지만 늘 그렇게 먹지는 않는다. 늘 그렇게 먹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먹이 피라미드의 상위에 위치한 잡식동물로 태어나서 나보다 약한 동식물의 목숨을 거두어 생명을 이어 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하지만 어떤 동식물도 오로지 나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나지는 않았다.


2025년을 살아가는 나는 심장이 터질 때까지 달리고 손에 피를 묻혀 가면서 직접 사냥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내 식탁에 오르는 살점들이 한때 같은 별 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 숨 쉬는 생명이었다는 사실을 가끔 잊는다. 전자레인지에 간편하게 넣어 데우기만 하면 곧장 섭취할 수 있는, 잘 손질된 고깃덩어리로 그들을 맞닥뜨릴 일이 훨씬 많다. 마찬가지로 손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가며 직접 채집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흙 알갱이 하나 없이 예쁘게 다듬어진 과채들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가끔 잊는다. 그래서 음식을 먹을 만큼 하고, 먹을 만큼 덜고, 되도록 남기지 않으려고 애쓴다.


너무 많이 '생산'되고 너무 많이 먹는다는 말은, 혀끝을 잠깐 맴돌다 금방 사라질 즐거움을 위해 앗는 목숨이 너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많은 음식은 필요 없다.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아도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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