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것에 대한 불만을, 혹은 가지지 못한 것을 향한 열등감을 느낀 적은 별로 없다. 그러나 배우자와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지언정 정서적으로는 거의 주 7일 24시간 내내 붙어 있다 보니, 내 손에 쥔 것과 배우자만의 것들을 나도 모르게 비교하는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배우자는 친구가 많다. 친구들의 이름을 일일이 외워서 내가 기억하는 인물들과 그때그때 연결하려면 무척 헷갈리기 때문에, 우리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별명을 배우자의 친구들에게 지어 줘야만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성격은 꽤 무던하다. 정말로 심각한 사건이 벌어지거나 긴장이 될 수밖에 없는 특정한 이벤트를 앞둔 때를 제외하면 대체로 회복탄력성도 좋다. 실없는 소리를 숨 쉬듯이 하는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 전혀 뜻밖의 순간에 눈물을 쏙 빼면서 웃을 수 있다.
나는 친구가 적다. 스스로 친구라고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적다. 어쩔 수 없이 결이 맞는 소수의 사람들하고만 가까워질 수 있다는 쪽에 가깝겠다. 모든 외부 자극에 지극히 예민하고 쉽게 탈진하기 때문에 내면에서 다 소화할 수 없는 정보, 이를테면 누군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최대한 느끼지 않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다 보니 어느새 그렇게 됐다. 지금으로서는 멀쩡한 1인분짜리 사회인으로 기능하기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고독을 견디며 무수한 밤을 뜬 눈으로 보내야만 했다.
만약 배우자와 나 사이에 자녀가 태어난다면, 되도록 배우자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내 배우자는 연인이고, 보호자이고, 이제는 가장 친한 친구이고, 내게는 없는 장점이 많고, 무엇보다도 나로서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 더는 괴로워하지 않게 되기까지 지독하게 외로워한 시간이 너무나도 길었기 때문에, 자녀가 배우자를 닮아야만 나보다 사는 게 좀 덜 힘들 것 같았다. 내가 낳지도 않은 자녀가 언젠가는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삶의 즐거움을 최대한 만끽하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배우자는 달리 이야기했다. 배우자의 무던한 성격은 누군가에게 무심함으로 여겨졌던 때도 있다고 했다. 나와 내 친구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지적 자극과 정서적 공감대를 나누는 것이 부러웠다고도 했다. 그리고 배우자로서는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좀 더 많아지기를 바라고, 나를 닮은 자녀는 분명히 상냥하고 선량할 것이기 때문에 자녀가 나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제 나를 그만 미워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자녀가 누구를 닮아도 괜찮을 것 같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자녀를 가지게 된다면, 그저 그 작은 인간이 진짜 자기 두 발로 서기 전까지 아낌없이 사랑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