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끼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중요한 것은 통제가 아닌 회복 탄력성

by 보현

개인 신상에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는 변화가 일부 있었다. 원치 않았지만 보고 들은 것들도 많았다. 유쾌한 방향은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일상의 평화를 지키는 것'을 새삼스럽게 삶의 대원칙으로 삼아서 여러 가지 생활 속 작은 원칙들을 세웠다. 감정을 불안하게 일렁이도록 만들 수 있는 불쾌한 외부 자극은 될 수 있는 한 차단하고, 신체 상태가 정서에까지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근무일에 섭취하는 음식의 종류와 열량, 영양성분까지 정교하게 계산하고, 각종 운동 수행을 통해 신체 움직임과 호흡에만 집중하고 머리를 비워 마음을 다스리는 식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쾌적하고 아늑한 진공 상태에서 살다 보니,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피할 수도 없는 아주 작은 파동만으로도 작위적인 일상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최근 절절히 느꼈다. 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데 심장은 손끝만 갖다 대도 파닥거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계속 세차게 뛰고, 불안에 잡아먹히는 동시에 진흙탕 밑바닥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도통 입맛이라고는 없었다. 사람 한 명은 우습게 잡을 것 같은 바깥 날씨도 한몫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눈빛만으로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로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랐을 때는,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척하면서, 날 부르는 게 분명한 사람의 목소리를 일부러 무시한 적도 있었다. 이것은 분명 위험 신호다. 내가 청소년기 중증의 우울증에 시달렸을 때, 나는 통학길마다 스펀지로 된 귀마개로 귓구멍을 틀어막곤 했다. 사람 목소리부터 자동차의 배기음까지, 내 귓가를 어지럽히는 모든 소리가 뇌를 찌르는 듯했다.


그래서 오늘은 노트북을 덮자마자 메신저 알림을 전부 꺼 버렸다. 헬스장 회원권은 일주일간 정지시켰다. 휴대폰 배터리가 바닥을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퇴근길에 장을 보러 가기로 한 계획을 곧장 수정해 집으로 향했다. 방울토마토를 한 주먹 씻어서 다 털어 먹은 다음에 간단한 저녁식사를 또 준비해 퍼먹으면서, 친구들과 메신저로 무아지경 수다를 떨었다. 친구들로부터 오는 답장이 좀 잦아들 때쯤 빨래와 청소, 설거지를 시작했다. 로봇청소기가 돌아가는 동안에는 오늘치 듀오링고 퀘스트를 전부 다 했다. 거짓말처럼 기분이 나아져서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철저한 통제는 나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내가 외부 변수로 말미암아 통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찾아오자마자 속절없이 무너질 뻔했다. 무얼 위해서 내가 이러고 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회복 탄력성이다. 바람에 속절없이 흔들리더라도 모양을 잃지 않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