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이탈 5분 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TV에서는 말하고 움직이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모델로 세워 빠른 인터넷 '메가패스' 광고를 하던 그 시절, 우리 집은 한 달에 9900원짜리 모뎀 요금제를 썼기 때문에 하루에 딱 한 시간만 PC통신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가진 컴퓨터가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가족을 겨냥하고 출시된 삼성 컴퓨터라 나는 천리안도 하이텔도 나우누리도 아닌 '꾸러기 유니텔'을 썼다. 다른 PC통신 서비스와 달리 무료로 이용 가능했다.
그때부터 랜선과 반쯤 동기화된 삶을 살았다. 유니텔에도 후대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비슷한 것이 있어 열심히 꾸몄다. PC통신이 아닌 인터넷 커뮤니티를 누비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HTML 태그를 독학해 어설프게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고 게시판을 설치하고 검색 엔진에도 등록했다. 홈페이지 붐이 좀 잦아들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네이버 블로그를 꽤 오래 썼다. 이후 이글루스에 몇 년 정착했다가, 티스토리로 잠시 옮겨 갔다가, 온갖 마이크로블로그를 거쳐서 2010년 무렵부터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아주 오래 했었다. 트위터는 일론 머스크가 사들이고 난 뒤로 하지 않은 지 오래됐고, 어르신들이 주류를 점하게 된 뒤로는 페이스북 계정도 버려두었고, 최근에는 브런치를 꽤 오래 썼다.
그러니까 돌이켜 보면, 난 무언가를 떠들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플랫폼을 여러 번 옮겨 타면서 끊임없이 떠들고, 또 떠들었던 것이다. 이런 직업을 가지게 된 것도 어찌 보면 필연적이겠다. 밥벌이는 논외로 하더라도, 머릿속에 어지럽게 들끓는 생각을 때로는 곱게 정돈해서, 대개는 손끝이 움직이는 대로 밖으로 꺼내 놓은 뒤 다른 사람들로부터 반응을 얻는 것이 재미있었다. 전에는 미처 알지 못하던 지식이나 통찰을 얻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정제되지 않았던 생각들이 다듬어지고 더 풍성해졌다.
최근에는 그런 기분을 느끼기 어렵다. 아마 이 글을 올리면, 구독하는 계정이 몇천 개쯤 되어서 그걸 다 읽기는 하는지 의심스러운 특정 몇몇 브런치 계정이 팔로워를 늘리기 위해 '라이킷'을 기계적으로 누르러 올 것이다.(매크로를 쓰는 것이 아닐지 혼자서 의심하고 있다.) 그중 절반가량은 '경제적 자유'라든지 '자기 계발'이라든지, 뭐 그런 것들을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있는, 이른바 '성공팔이'들이다. 사실 브런치만 그런 것도 아닌 게, 오래된 블로그 플랫폼은 다 그런 식이다. 근래 들어 좀 사그라들기는 했지만, 네이버 블로그가 부업 수단으로 각광받으면서 포스트의 질이 눈에 띄게 하락한 지는 꽤 되었다. 최근에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가속이 붙는 중이다. 트위터는 알고리즘이 망가져서 거대한 투기장으로 변했다.
우연히 발견한 네이버 블로그 소개말이 '깔짝대는 광고 계정들의 주식·코인 떡락하는 저주 걸어 둔 블로그'였다. 속이 시원해서 한참 낄낄거렸다. 이 피로감을 누군가와 공유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어쨌든 나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혼자서 열심히 떠들기는 할 텐데, 성공팔이들이 창궐하고 메아리라고는 없는 브런치에서 떠드는 것은 이제 좀 질렸다. 그렇다고 대안적인 플랫폼은 또 딱히 보이지 않아서 몇 달째 답이 없는 고민만 하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트위터를 다시 시작하더라도 다른 창작 플랫폼을 시험 삼아 써 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