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혼자 농담 하나도 재미없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욕보이지 마세요

by 보현

최근 아주 인상적인 결혼식에 다녀왔다. 축의금을 먼저 받았으면 돌려주는 것이 도리이므로 순전한 의리, 정말이지 순도 100%의 의리만으로 게으른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예식장에 도착했다. 하객 맞이를 하고 있는 신랑과 악수를 나누며 "조금만 버티면 비행기 탈 수 있으니 힘내라"며 축하와 함께 진심을 담아 인사를 했는데, 잠시 후 내가 결례를 저질렀을지도 모르겠다고 약간 후회했다.


신랑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행복해하는 결혼식은 처음 가 보았다. 우리는 발생 부서에서 함께 일했기 때문에 으레 파김치가 되거나 머리끝까지 화가 난 모습만 보았는데, 그날은 신랑 주변에만 스포트라이트가 따라다니는 것마냥 얼굴이 아주 화사했다. 내 결혼식 당일 새벽 4시부터 식이 끝날 때까지 긴장해서 신경이 온통 곤두섰던 경험만을 생각하느라 저런 식으로 인사를 했지만, 정작 식의 주인공은 온몸으로 신부를 사랑한다고 외치느라 피로나 긴장도 느낄 새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몇 달 전 다른 사람의 모바일 청첩장을 받고 안부 인사를 나누던 때와 자연스럽게 비교가 안 될 수가 없었다. 결혼 준비가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내 결혼 준비 과정에 자신의 선택이나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추호도 없으며 향후 결혼 생활을 원만히 이어 나가기 위해 오로지 신부의 뜻에만 따라야 한다는 취지로 아주 오랫동안 투덜거렸다. 다른 기혼자들이 "너도 좋은 시절 다 끝났다"라는 식으로 킬킬대더라는 이야기도 한술 곁들였다.


실은 나도 결혼 소식을 알릴 때 더러 "좋은 시절 다 갔구나"는 말을 들었다. 한국식 겸양의 표현이나 농담의 일종일 수 있겠다는 식으로 힘겹게 납득은 했다. '과시는 결핍'이라는 온라인 격언(?)도 있고, 실제로 행복을 과시해 봤자 유난스럽다는 눈초리나 받을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왜 굳이 저런 식으로 이야기하는지 이해는 못하겠다. 기업 인수합병하듯 중세식 결혼관을 바탕으로 결혼하는 사람들도 있기야 하지만(이게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체로 배우자와 함께 살면 좋을 것 같아서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결혼을 하려고 들거나 이미 했으면서, 도대체 왜 불구덩이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인지.


꼬아 들으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상대방이 날 너무 사랑해서 어쩔 수 없이 결혼해 줬다? 나이가 찼는데 결혼을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마침 적당히 사귀고 있던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됐다? 뭐 그런 건가? 저런 식으로 말하면 배우자를 욕보이는 꼴밖에 안 된다. 물론 내게도 좌충우돌한 끝에 힘겹게 탑재한 쥐꼬리만큼의 사회성이 있기 때문에 적당히 받아 넘기기는 하지만, 배우자를 내 삶의 족쇄라든지, 뭐 그런 식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 결혼은 보고 있으면 그저 예쁘고 같이 놀면 재미있고 이야깃거리가 떨어지지 않는 가장 친한 친구와 사회적 약속, 법적 계약으로 묶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도록 결혼 소식을 알리는 사람들에게는 "결혼 재미있고 좋아"라고 말한다. 소중한 지인들이 짝꿍을 찾아서 인생의 새 관문으로 들어서서 새로운 가족을 꾸리는 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다. 기혼자 농담 하나도 재미없다. 내가 새 가족으로 맞아들이겠다고 결심한 사람을 설렘도, 편안함도 없이 그저 지긋지긋한 마음으로 보게 된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그런 마음이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남긴 음식의 행방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