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여섯 시. 익숙한 알림음에 눈을 겨우 떴다.
한동안 잠잠했던 불면증이 다시금 덮쳐왔기 때문일까.
두세 달 전부터 잠을 이루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피곤은 하지만, 눈은 떠야 했다.
목 넘김이 답답해 미세먼지 앱을 열어 보니, 공기 상태는 최악.
여느 때와 다름없이 턱- 막힌 숨을 뱉고 휴대폰 액정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늘 며칠이더라. 무슨 요일이지? 목요일이네. 하루 남았다.'
밤새 고마운 문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내렸다.
허전한 마음에 그나마 위안이라도 주려는 듯이.
"아... 나 어제 생일이었지."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개고, 화장대를 정리하고 텀블러와 책 한 권을 배낭에 넣는다.
잠깐동안 트레이닝 팬츠를 들었다 놓았다 반복하다가 한숨 쉬며 내려놓는다.
'어차피 오늘도 운동은 글렀지 뭐'
급하게 집을 빠져나온다.
집에 더 오래 있다간 우울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회사로 다다르는 이 길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했다.
작년 12월부터였을까? 아니 그전부터 꽤 오랫동안 그것은 나의 사명 같은 것이 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
아침 7시 반.
이른 시간이지만 지하철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나마 인파를 피해보고자 온 시간이지만, 다들 너무 바쁘게 사는 모양이다.
모두 힘들겠구나 싶으면서도 나 또한 가슴을 조여 오는 답답함이 느껴진다.
안정감을 찾고 싶어 배낭을 돌려 매 책을 꺼냈다.
'걱정을 멈추고 즐겁게 사는 법'.
데일 카네기의 책이었다. 4년 전 한창 자기 계발에 빠져있을 때 홀리듯이 산 데일 카네기의 출간작들이 빼곡한 건 어떻게 알았는지, 유튜브 알고리즘에 운명처럼 등장한 책이었다.
제목이 임팩트 있진 않았고, 그저 내 현재 상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바로 구매했다. 카네기 선생님이라면 몇 달 동안 지속되는 내 깊은 꾀병을 고쳐주지 않을까 싶었다.
회사로 다다르는 45분가량 책을 재밌게 읽어내고 지하철을 내리면서 한 문장이 너무 와닿았다.
'걱정해 봐야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그에 대한 내용은 단계별로 해석되어 있었는데 아래와 같다.
1단계. 대담하고 솔직하게 분석하고 실패의 결과 최악의 경우 생각하기
2단계. 최악의 경우를 생각 후 필요하다면 그것을 감수하기
3단계. 최악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차분히 시간과 힘을 쏟기
'그래. 지금 내 상태가 힘들다고 느껴져도 어차피 슬럼프일 거야. 어떻게든 버티면 지나가고 다시 괜찮아질 거야. 최악의 경우엔 이직하거나 그만두면 되지 뭐.'
사실, 큰 대안은 없었다.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캐시플로우는 나에게 달콤했고, 나에겐 그 최악이 너무 막연했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개발자라는 직업을 얻고 나서 주변 인식과 부모님의 자랑이 된 것 같아 놓을 수가 없었다. 실망시킬수가 없었다.
'그냥'.'어떻게든'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
.
.
오후 9시.
텅 빈 사무실 안.
2주 동안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컴퓨터를 붙잡고 늘어지고 있는 나와 마주했다.
그리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과연 여기서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
이런 상황은 몇 번이고 이 회사에서 발생했던 것 같은데 그때마다 내가 해결하지 못해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인가?
아니면...나 자체가 이곳의 문제덩어리인가?
기계가 되어야 하지만 기계가 되지 못하는 인간의 비참한 피노키오의 역설과 같은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스타트업 특성상, 시간이 갈수록 나는 더 많은 양의 업무를 더 정확히 진행해야 했으며 시차 4시간의 직원들과 협업해야 했고 무엇도 원활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걸 잘해야 했고 완벽해야 하지만, 점점 더 그것과는 멀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처음 이곳에 입사했을 때는 나 자신이 반짝거리는 돌 같았다.
그래서 내가 다이아몬드 원석인 줄 알았다.
피드백을 받고 최선을 다했고 도움이 된다, 일처리가 빠르다는 칭찬에 더 빨리 더 많은 일을 할수 있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야근, 실적에 대한 압박감, 사실상은 해고에 가까운 권고사직으로 잘려나가는 직원들..
내가 입사한 이래로 근간 2주뿐 아니라 주기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지금 이 일이 나를 살리는 있는 일인가 죽이는 일인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실제로도 나는 점점 죽어가는 느낌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목은 점점 부어오르고, 숨은 잘 쉬어지지 않으며 허리가 아파서인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병원을 여러 군데 가봤지만 그저 스트레스성이라고 할 뿐이었다.
살아가는데 부족한 시간. 일의 양. 망가져가는 몸. 수면장애. 우울증 초기 증상.
너무 힘이 들고 우울하여 상사에게 따져 물었었던 어제의 기억이 생생했다.
"이 업무는 끝이 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살려달라는 일종의 신호였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회사에 애원할 순 없었다. 회사도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있기에 나라는 사람 하나 배려해 달라는 게 웃기기도 했다.
회사는 급속도로 개인이 미친듯이 성장하기를 원했고, 나는 그것이 가능할 줄 알았다. 이 일자리, 이 경력을 얻기 위해 뭣도 모르고 도전하고 커리어 전환에 성공한 무모한 30살의 나를 믿었기 때문에 꽤 재능 있고 특출 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급하게 일을 끝내고 일단 집에 가서 쉬어야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긴 장문의 상사의 빼곡한 피드백이 담긴 메시지를 확인하고,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기는 것을 느꼈다.
많은 직원들이 있는 공간에서 나의 업무자질을 평가하는 메시지였는데 나는 그것이 꽤 큰 충격이었다.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이 아직도 많이 부족하며 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1년 7개월. 그간의 노력과 발버둥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더 이상 여기서 노력을 할 수 있는가?
아니. 나는 살아야 했다.
컴퓨터 앞에서 죽어가기엔 너무 살고 싶었다.
이제 막 34살. 나의 생일이 하루 지난 2월의 어느 목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