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여행 리포트》, 미키 코이치로, 2019, 브런치 무비패스#5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고양이 여행 리포트》 순한 맛
이름에서부터 '고양이'가 들어가기 때문일까, 아니면 포스터의 잔잔한 분위기에 안심해버린 때문일까. 《고양이 여행 리포트》는 오랜만에 만난 순한 영화였다. 물론, 내 옆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서부터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휴지를 몇 뭉텅이 썼을 정도로 펑펑 울었지만. 영화의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면 극의 후반부에서는 눈물이 흐르는 게 자연스러움에도 순한 맛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감정의 농도가 아니라 뇌의 편안함(?)에 있다. 가장 최근의 감상작들 중 《우상》의 경우에는 보는 내내, 그리고 끝난 이후까지도 난해함과 그 해석에 머리를 싸매느라 진이 빠졌다. 반면, 《이스케이프 룸》의 경우 내용은 어려울 것이 전혀 없었지만, 내가 직접 스크린을 뚫고 들어가 '방탈출'을 하고 나온 것처럼 피로했다. 함께 관람한 친구와 영화관을 나서며 쫑알쫑알 감상을 나누는 대신 서로 얼마나 기력이 쇠했는지에 대해 중얼댔다. 《고양이 여행 리포트》와 비슷한 결의 영화로 이야기하자면, 《베일리 어게인》이 있겠다. 나나처럼 강아지 베일리가 영화의 내레이션을 맡고, 반려인과의 끈끈한 유대를 다루었으며, 그에게 여러 시련이 닥친 점 등 여러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무언가 삶의 근본을 관통하는 철학적인 질문과 마주친다. 한 장면 한 장면 숨은 코드들을 찾아내려고 애써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나의 마음가짐 탓일 수도 있지만 《고양이 여행 리포트》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자극적인 것 없이 잔잔한 영화였다.
2. 집사 여행 리포트
영화의 원제 역시 크게 다를 것 없는 《The traveling cat chronicle》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고양이의 여행'은 그저 수단일 뿐일지도 모른다. 고양이를, 아니 반려 동물과 함께 한 시간이 있는 이들이라면 주위 사람들에게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시작부터 하지 말라"는 말을 심심찮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나의 반려인 사토루는 모종의 이유로 나나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 괘씸함은 잠시 접어두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굳이 따져보자면 어렵지않게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이유보다는 나나의 새 반려인을 찾는 과정 속에서 사토루의 인생에 조명을 비춘다. 사토루가 성인이 된 이후 몇 년의 시간만을 함께 한 나나로서는 알 수 없는 사토루의 과거를 설명하는 데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그 여정을 조용히 따라가노라면, 사토루의 인생은 왜 그토록 우여곡절이어야만 했는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 두 분을 한 번에 여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친척들의 모진 소리를 듣는 와중에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었던 첫 번째 고양이 하치와도 이별한다. 청소년이 되어서는 하치를 다시 찾아가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결국 하치의 마지막도 놓치고, 좋아하던 치카코에 대한 마음 역시 자주 이사 간다는 이유로 접어야만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나와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도중 실은 부모님의 친자식이 아니었다는 출생의 비밀까지 알게 된다. 이쯤되면 《사토루 여행 리포트》가 더 어울리는 제목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고양이 여행 리포트》가 틀린 제목이 아닌 이유는, 사토루와 고양이 사이의 한 가지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사토루도, 고양이도 그 생이 얼마나 기구하든 스스로를 동정하거나 연민하지 않는다. 이는 외려 보는 사람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