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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선 Jun 14. 2020

질문이 잘못되었다

행복이 아니라 평온에 대해 묻기로 한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행ː복, 幸福
1. 사람이 생활 속에서 기쁘고 즐겁고 만족을 느끼는 상태에 있는 것.
    "∼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2. 사람의 운수가 좋은 일이 많이 생기거나 풍족한 삶을 누리는 상태에 있는 것.
    행우(幸祐). 휴복(休福)."딸의 ∼을 빌다. ↔불행(不幸)"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언제 행복한지 말해주세요, 우리는 어떻게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등등 행복에 관련된 질문이 넘쳐난다. 행복해야 된다고, 행복할 수 있다고 설득하는 책, 강연, 영상이 날마다 쏟아진다. 행복에 관한 질문은 자주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행복에 대한 답을 찾다 보면 나는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가고 있었다. 매번 길을 잃어버렸다.


나는 대체 언제 행복한 인간일까?

좋은 학교를 가면 행복한가, 돈이 쓰고도 남을 만큼 있으면 행복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한가, 좋은 배우자를 만나면 행복한가, 가족이 화목하면 행복한가, 성공하면 행복한가 아니지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이니 건강하면 행복한가.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으라고들 하니 오늘 아침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고 괜히 기분이 상쾌하고 들떴는데 그럼 이게 행복인가. 막연한 질문이고 막연한 대답이다. 행복의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니 행복의 본질은 무엇이고 언제 어떻게 왜 행복해야 하는지 알기도 어렵다. 차라리 언제 웃기냐, 언제 기분 좋으냐고 물어보면 쉬울 것 같다. '헨지펭지 완전 좋아. 보고 있으면 막 웃게 되고 기분이 좋아져. 둘은 진짜 음악 천재, 애드리브 천재들이야. 너무 웃겨' 


질문이 잘못되었다

"동양철학에는 행복이란 개념이 없었습니다. 마음이 평온한가 아닌가를 중시했죠" 

점심을 배가 터지도록 먹고 곧바로 책상 앞에 앉아 실시간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었다. 머리를 책상에 처박다시피 하며 졸음과 싸우던 찰나, 동양철학 교수님의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스치 듯 '행복'을 언급한 교수님은 다음 진도를 향해 서둘러 바삐 나아가고 있었다. 

그래 이거였다.  지금까지 나는 질문을 잘못하고 있었다. 잘못된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이 나올 리 없었다. 행복이 무엇이냐 언제 행복하냐고 물으면 '조건'을 댈 수밖에 없다. '돈이 만원 있으면 행복해요'란 명제가 참이라 해서 그 역인 '만원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다'는 항상 참이 아니지만 왠지 항상 참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행복에 조건이 붙으면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한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 같다. 내 행복의 조건인 건강, 부, 명예, 인간관계가 어그러지면 내 행복도 어그러질 것 같다. 본말이 전도되어 행복하자고 매달리는 게 아니라 조건에 매달려 혹시나 잃을까 어떻게 얻을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한자문화권에서 ‘행복’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서구와의 접촉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20세기 전후로 알려져 있다. 서구의 행복이란 단어와 의미가 상통하는 용어를 유교 경전에서 찾아보면 ‘복’(福), ‘열’(悅). ‘낙’(樂) 등이 발견되며 불교 경전에서 찾아보면 ‘고통을 벗어난 상태’ 임을 알 수 있으며, 노장사상에서는 ‘아무런 구속이나 제약이 없는 자연 상태’ 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유교는 현세적 행복을 추구하고, 불교는 ‘초월적이나 비 유신론적인’ 행복을 추구하며, 노장사상은 소요유(逍遙遊)가 상징하듯 마음의 행복을 추구한다. 동양에서 수양 문화가 특히 발달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혹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동양사상적 의미에서 행복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유교의 경우 선비(혹은 문사 계급, 산림 처사), 불교의 경우 출가자(방랑하는 계층, 수행자), 도교의 경우 도인이 바로 그들이었다.
             -동양사상 속의 행복 개념과 한국사회의 ‘행복' 현상 (유승무,중앙승가대 포교사회학과) 중


당신의 마음은 평온하십니까?

질문을 바꾸었다. 나는 지금 마음이 평온한가.

돈이 많아도 없어도, 건강이 좋아도 안 좋아도, 좋은 동반자가 있어도 없어도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마음의 평온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외부 조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든 스스로 주체가 되어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 시험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 당장 내일 시험을 망치고 성적을 엉망으로 받을지언정 나는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 그건 자신한다. 다만 그 성적을 받아 들고 행복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마음이 평온할 때는 큰 바다에 물결이 듯 내 감정과 생각의 파고를 지켜볼 줄 알게 된다. 마음이 바닥에 닿을 듯 심연에 가라앉을 듯 하다. 그러면 눈앞에 펼쳐진 사태를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차갑게 볼 수 있다. 그 신랄한 마음이 있어야 제대로 궁리(窮理·이치를 곰곰이 따져보며 연구함)하고 성찰할 수 있다. 

나는 이제부터 질문을 바꾸기로 했다. 

"친구야 요즘 마음이 어때? 지금은 마음이 평온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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