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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선 Sep 10. 2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마 속 자전거 여행

등 떠밀려 시작한 장마 속 전국 자전거 일주에서 보물을 발견했다

널 위해 전국 자전거 여행을 준비했어

2002년,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가 한 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였다.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지만 나는 왠지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원하던 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4수까지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전공인 생명과학부에 떡하니 입학해 있었다. 월드컵 열기까지 더해진 첫 학기에는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신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저 매일같이 놀기에 바빴다. 방학이 되니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적성에 안 맞는 학교 공부를 계속하나 마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인생을 돌아보고 미래 계획을 숙고할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보다가 주인공의 대사에 무릎을 탁 쳤다. 그랬다, 나는 늘 내가 보는 것만 보고, 듣는 것만 듣고, 생각하는 것만 생각해 왔다. 내 안에 갇혀 사는 게 어찌나 지겨운지 이제는 나를 좀 넘어설 수 있는 환경과 맞닥뜨려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시도해 보지 않았던 일들이 가득한, 크고 작은 용기와 결단이 시도 때도 없이 필요한 상황들 말이다. 거기에서 나를 시험하다 보면 자연스레 미래에 대한 현명한 답을 얻을 수 있으리란 희망에 부풀었다. 그런 곳으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보고 싶었다.

사실 여행이라면 해외여행도 좋겠지만 그전에 우리 땅을 더 잘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가운데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이 너무너무 많았다. 아니 대부분이었다. 고향인 경북 북부지방 일대나 수도권만 좀 다녀봤지 그 외 지방을 제대로 여행한 적이 딱히 없었다. 이번 여름방학을 맞아 국내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졸업까지 6년 넘게 자전거로 통학한 경력이 있었다. 덕분에 도로에서 자전거 타는 요령을 터득할 수 있었다. 운동신경과 지구력도 있는 편이라서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서울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녀도 피곤함 보다 재미가 우선이었다. 여행경비를 최대한 아끼며 내가 가고 싶은 데로 돌아다니고 발길 닿는 곳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데 자전거만큼 좋은 수단이 있을까. 게다가 우리 집 막둥이가 고3 시절, 이미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무전여행을 다녀온 이력이 있었다. 동생의 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대단하단 생각을 했었는데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겠나 싶어졌다. 그래, 이번 여행은 국내 자전거 여행으로 하자.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떠날지 정할 차례였다. 지금까지 가 본 적 없는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았다. 너무 멀어서 엄두를 못 냈던, 평소 꼭 들르고 싶었던 곳 두 군데가 번뜩 떠올랐다. 먼저 내가 존경하는 학자이자 휴머니스트인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유배지인 강진이었다. 선생님이 어떤 곳에서 거처하고 계셨길래 그 대단한 저서를 쏟아내듯 남긴 것인지 궁금했다. 다산 선생님은 흑산도를 바라보며 유배지에 갇혀 만날 수 없는 형 약전을 사무치게 그리워했다는데, 나 역시 그 정자에 올라 보고 싶었다. 선생의 숨결이 묻은 곳을 차근차근 돌아보리라 다짐했다.

가보고 싶은 다른 곳 하나는 남도길이었다. 다들 남도, 남도 하는데 그 남도라는 곳이 도대체 어디쯤 있고 어떤 곳인지 남도의 풍광을 자전거로 천천히 여유롭게 감상하고 싶었다.  

됐다, 여행 루트가 나왔다.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을 벗어난 뒤 경기도를 지나 충청도, 전라도를 돌아보고 남도를 따라가기로 했다. 여행의 대미는 그렇게 아름답다는 제주도 일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여행 방법과 여행지가 모두 깔끔하게 정해졌다. 이제 본격적인 여행 준비만 남아 있었다.


막상 자전거 여행 준비를 하려고 봤더니 딱히 준비할 게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사람은 무식하면 용감해진다. 유일하게 내가 사전에 신경 쓴 거라곤 머리 염색뿐이었다. 한 낮 땡볕에 하루 종일 노출되어 있으면 아무래도 검은색보다 밝은 색 머리칼이 일사병을 예방하는 데 유리하지 않을까 나름 짱구를 굴린 결과였다. 옷가지라곤 위아래 각각 2벌씩, 그리고 비 올 때를 대비해 판초 우의도 챙겼다. 침낭과 간단한 세면도구까지 25리터 책가방 크기만 한 배낭에 넉넉하니 들어갔다. 아, 자전거? 몇 년 전 언니가 사둔 마실 다닐 때 이용하던 일제 접이식 자전거가 있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여행 준비가 모두 끝이 났다.

모험을 계획한다고? 그럼 자전거를 골라, 자전거로 꼭 떠나 봐



시작부터 꼬이는 여행, 출발 아침 장마가 시작되었다

드디어 대망의 자전거 전국일주 시작 날이 다가왔다. 출발일은 일요일 아침 7시, 늦어도 8시에는 출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번 여행은 무전여행이라 숙소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목적지라고 해 봐야 강진, 남도길만 정해져 있었지 그 외에는 딱히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없었다. 아 맞다, 친한 선배 하나가 본가인 광양에 있으니 한 번 들러가라고 소식을 전해오긴 했다. 다이어리 뒤편에 붙어있던, 양 손바닥 크기의 전국지도 한 장을 찢어낸 뒤 투명 테이프로 돌돌 말아 방수 처리를 했다. 앞으로 이 지도에 전적으로 의지한 채 발길 닿는 대로 도시를 이리저리 들러 볼 참이었다. 남들이 보면 경악할 정도로 보잘것없는 지도였지만 여행하는 동안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어 주었는지 모른다. 공로상이라도 하나 만들어 자전거 다음 순위로 수여하고 싶을 정도였다.


난생처음 시도하는 모험을 코 앞에 두고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출발 전, 밤새 뒤척뒤척하다 밤이 깊어서야 설핏 잠이 들었었다. 알람 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떠보니 새벽 5시였다. 이제 일어나 출발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런데 창 밖으로 두둑두둑 하는 빗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이런 하필 출발 당일 비가 오냐'

어떻게 날을 잡아도 시작부터 비가 오냐. 빗속에서 자전거 주행할 일은 생각만 해도 어설펐다. 비는 여행 시작을 미루는 데 좋은 핑계가 될 것 같았다. 당장 오늘 저녁 어디서 자야 할지 계획이 없는터라 그저 막막하던 상황이었다. 모험을 앞두고 마음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던 때 비가 내려주고 계셨다. 어차피 비 속에선 자전거를 못 탈 것이다, 너무 위험했다. 비가 그쳐야 출발이든 뭐든 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자 다시 스르륵 눈이 감겼다. 못다 한 잠을 자두는 편이 나았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얼마쯤 지났을까, 귓가를 찢을 듯 울리는 전화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걸어온 전화였다.

"산아, 오늘 자전거 여행 시작한다고? 이제 곧 출발할 참이네?"

부모님 계신 곳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 게 틀림없었다. 순간적으로 "아 예, 이제 곧 준비해서 나가려고요"라고 우물쭈물 대답했다. 오늘부터 말도 거창한 '전국 자전거 무전여행'의 대장정을 시작한다고 진작에 부모님과 형제와 친구들 몇몇에게 공언해 놨던 터였다. 비 때문에 출발을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 항상 차 조심하고, 건강 유의해서 다녀오너라. 수시로 집에 전화하고."

자상하고 부지런한 우리 부모님, 자식이 여행을 떠난다니 출발 전 격려차 전화하는 걸 잊지 않으셨다. "네"하고 전화를 끊고 보니 오전 7시가 넘어 서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창밖으로 들리는 빗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제야 일기예보를 확인해 보니 오늘부터 여름 장마가 시작이라고 했다. 오 마이 갓. 그렇다, 나는 이렇게 대책이 없었다. 목적지도 제대로 없는 여행이라고 일기예보를 미리 체크해 둘 생각을 못 했었다. 그런데 하필 여행 첫날이 딱, 장마 시작일이랑 겹치다니. 진지하게 이번 자전거 여행 일정을 미루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커져갔다. 빗속 주행은 위험하고 또 위험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면 찝찝하고 무진장 어설프고 무엇보다 별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빗속을 달리는 게 뭔 재미가 있겠나. 힘만 들겠지. 젖은 옷은 어떻게 말릴 거야, 준비한 옷이 단 두 벌뿐인데.


막상 여행을 미루자니 마음에 걸리는 점이 두 가지 있었다.

먼저 주변 사람들에게 오늘 여행을 시작할 거라고 떠벌려 놨는데 '너 왜 아직 서울에 있어?'하고 물어 오면 '아 그게 말이야 장마 때문에 계획이 수정되었지 뭐야 호호호호' 하는 게 왠지 구차하고 없어 보일 것 같았다. 실은 모험에 나설 용기가 부족했음을 들키지나 않을까 괜히 부끄러워졌다. 물론 그들은 별 신경도 안 쓰겠지만 괜히 내 마음이 그랬다.

두 번째로는 이제 시작된 장마가 언제 끝날 지 몰랐다. 일주일이 걸릴지 열흘이 될지 보름 후에나 끝날지 확신할 수 없었다. 미루고 미루다 장마가 끝날 때쯤엔 자전거 전국일주에 대한 나의 의욕, 열정, 호기심이 흔적 자취도 없이 사라져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그렇다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장마 빗 속을 자전거를 끌고 달리라고?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생각만 해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축축하고 찐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진퇴양난. 아 다시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다. 왜 나는 괜히 이런 여행을 계획해서 고생을 사서 하려는 것인가.


아직 출발 안 했니?

부모님께 곧 출발한다고 얼떨결에 말씀은 드렸지만 선뜻 집을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막상 닥치니 겁도 나고 어설프기도 하고 귀찮은 생각도 들고 괜히 일을 벌였구나 싶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책상 앞에 쭈그리고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만 듣고 있었다. 베란다에 뭘 좀 가지러 가지러 갈까 싶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면 오빠 방을 통과해야 했다.

오빠는 워낙 잠이 많아서 출근이 아니면 아침나절이 지나도록 깨는 법이 없었다. 한밤중 우리 옆집에서 경찰까지 출동하는 큰 부부싸움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일대가 소란스럽고 난리가 났었는데도 혼자 세상모르고 잘 자던 인물이 바로 우리 오빠였다. 아침에 상쾌하게 일어나 '간밤에 무슨 일 있었어?'라고 물어서 우리 형제들이 모두 뜨악했었다. 한 번 잠들면 세상모르고 자는 그런 오빠가, 이 날 따라 내가  방문을 열자마자 평소와 다르게 잠을 깨었다. 눈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잠긴 목소리로 나에게 말까지 걸어왔다.   

"어어, 아직 출발 안 했나?"

이게 다 아침 일찍 출발할 거라고 호언했던 내 탓이었다. 오빠는 비몽사몽 밖에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바람이 부는지 알 턱이 없었다. 차마 비가 와서 미적대고 있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오늘부터 여행이라고 떵떵거려 놓은 게 있어서 맥없이 꼬리를 내리는 대신 "응, 인제 출발할 거야" 호기롭게 대답하는 수밖에.

"그래 잘 댕겨 온나"

오빠는 잠결에 내 자전거 여행 시작에 쐐기를 박아 놓고는, 태평하고 평화롭게 그리고 지체 없이 다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더 이상 출발을 미룰 형편이 못 되었다. 우리 집에선 장마비도  통하지 않았다.



진정한 보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났을 때 발견할 수 있더라

자전거 전국일주 내내 얼마나 주야장천 비를 맞아댔던지, 평생 우산 없이 맞을 비를 그때 다 맞았던 것 같다. 장대비를 뚫으며 자전거로 지리산 고개를 넘을 땐 진짜 너무 힘들고 괴롭고 서러워서 눈물이 펑펑 났다. 비 속에서 눈물을 쏟고 있자니 볼때기만 따뜻해질 뿐, 얼굴에 흐르는 게 빗물인지 눈물인지 분간도 되지 않았다. 장마가 어느새 잦아드는가 싶었는데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마침 태풍이 상륙했다. 태풍이 몰고 온 비바람과 싸워대느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벅찼다. 제주섬 일주 동안 경치는커녕 사람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다. 제주 해안도로 위엔 판초우의 자락을 휘날리며 자전거로 발싸심을 해대고 있는 존재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한반도의 70% 이상이 산지면적이라는 걸 제대로 체감한 기회이기도 했다. 그놈의 오르막은 어찌나 많은지, 긴 오르막 길이 눈 앞에 펼쳐질 때마다 도로 왔던 길로 되돌아 내려가고 싶었다. 죽어라 페달을 밟아대고 있자면 입에선 씨발씨발 소리가 절로 나왔다. 누구인지도 모를 대상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다. 하루 일과를 적은 여행기는 온통 욕설로 시작해서 욕설로 끝나고 있었다.


무전여행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잠은 파출소, 불교 사찰, 천주교 성당, 원불교 교당, 동네 마을회관, 완도 생선장수 할머니 댁, 광양 선배네 집, 보성 기차역, 제주 도서관, 원광대학교 수위실, 제주대학교 기숙사 등에서 하루하루 잠자리를 얻어서 잤다. 배가 고프면 길가 식당에 들어가 공깃밥만 천 원어치 샀다. 청양 어느 사찰에서 신세 질 때, 주지인 비구니 스님이 더위에도 상하지 않는 거라며 손수 담근 여러 종류의 장아찌를 내 배낭에다 바리바리 싸서 넣어주셨었다. 공깃밥에다 장아찌를 곁들여 먹으며 시장기를 달래곤 했다. 배고픔과 괴로움과 걱정은 출발과 더불어 내 자전거 뒷좌석에 덜렁 올라타설랑은 여행 내내 함께였다. 평범하게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깨닫고 나니, 식사 때마다 감사 기도하는 습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여행 내내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경찰관 아저씨들, 불교 스님, 원불교 교무님, 성당 관리인 아저씨, 제주도 마을 이장님, 수위실 아저씨, 생선파는 할머니, 또 다른 자전거 무전 여행자 남자 둘, 선배네 부모님, 기차역 노숙자 등등 스무 살 초반 내 인생에서 이렇게 다양한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초반엔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고 어떤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도 몰랐다. '혹시 오늘 여기서 묵어갈 수 있을까요?'라는 말이 차마 떨어지지 않아서 얼마나 긴장하고 쭈뼛거렸는지 모른다. 부탁이란 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었다. 아스팔트 짬밥을 하루 이틀 먹다 보니, 어느덧 나는 완도의 생선파는 할머니의 셋방으로 졸졸 따라가 마치 손녀인 듯 더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할머니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할머니의 일을 돕는 사람으로 변했다. 나도 모르는 나를 하나씩 둘씩 만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이때만큼 객기가 넘쳤던 시절도 없는 것 같다. 계획이랄 것도 없이 그때그때 발길 닿는 대로 떠난 여정이었다. 자전거를 탄 첫날부터 엉치뼈가 뽀개질 것처럼 아팠다. 나는 혼자였고 내 앞에 놓인 상황을 혼자서 결정하고 해결하고 견뎌 나가야 했다. 내가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은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소망, 나를 넘어설 환경을 맞닥뜨리고 싶다는 바람은 대성공이었다. 매 순간순간 관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들었어도 억지로 꾸역꾸역 다잡아가며 울면서라도 도전을 이어 나갔다. 고통스럽고 고생스러운 순간들이 여행 내내 이어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 냈다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용기란 게 내 안에도 있다는 걸 발견한 순간이었다.

비록 여행 시작 전 원하던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나'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대신 그때 알았던 것 같다.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막 우러나오는 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거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길이 보일 거란 사실을, 비록 대학입시에 네 번이나 실패한 처지였지만 그래도 나는 결심한 바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또한 말이다. 시작하지 않았으면 결코 발견하지 못했을 것들이었다. 이때의 경험은 차곡차곡 내 안에 쌓여 내가 나로 살아나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보물이 되어 주었다.

나름 대단한 모험을 해 내느라 내가 가진 에너지를 몽땅 써 버린 듯했다. 해냈다는 기쁨도 잠시, 마지막 종착지였던 목포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 집으로 돌아온 뒤 그동안 몸에 쌓인 여독 때문에 한 달을 끙끙 앓아야 했다. 그랬더니 방학은 이미 다 지나 있었다.


눈이 부실만큼 온통 햇볕을 받아 부서지듯 반짝대던 그때의 섬진강을 잊을 수가 없다. 이른 코스모스가 피어 있던 도로 위에는 생을 다한 잠자리들이 마치 이륙을 준비하는 비행기처럼 수도 없이 놓여 있던 광경이 눈 앞에 생생하다. 감상에 젖어 다산초당을 떠나던 때, 불쑥 나타난 개 한마리가 미친듯이 짖어대며 내 자전거를 뒤쫓았고 나는 허벅지가 터져라 페달을 밟아대며 정신없이 도망가던 장면도 훤하다. 보성역에서 노숙한 뒤 새벽녁 안개 비를 맞으며 홀로 걷던 녹차밭 삼나무 숲길의 아련함은 말로 설명이 안 된다. 여름 장마비를 맞을 때마다 그 때 그 치열했던 자전거 무전여행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모험을 시작할 용기가 한참 부족했던 그 날, 나는 등이 떠밀려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이 날을 떠올려 본다. 내 안에서는 하고 싶다는 소리가 터져 나오는데 남들이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고 말릴 때마다, 또 이 날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조용히 되뇌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서야 하는구먼, 거기에 진정한 보물이 있나 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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