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두기 재활용한 알바생 너무 혼내지 마세요

by 김커선

내가 제일 선호하는 외식은 단체급식이다. 학교 학생식당, 회사 구내식당이면 땡큐다. 단체급식의 제1 목표는 맛이 아니라 위생이라는 영양사의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 단체급식을 향한 나의 신뢰는 일편단심 민들레이다. 복장 규정을 준수하며 위생적인 환경에서 조리하는 광경을 보면 믿음이 싹튼다. 배식구와 퇴식구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니 남은 음식을 재활용할 거란 우려는 괜한 걱정이다. 웬만하면 1인분씩 제공되니 옆 사람과 숟가락, 젓가락을 섞지 않아도 되고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마음 놓이는 일인지 모르겠다.

이런 단체급식이 아니라면 외식을 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신경이 곤두선다. 식당을 이용할 적마다 이 반찬은 재활용된 걸까 아닐까 관찰하고 살피는 게 버릇이 되어 버렸다. 반찬 재활용은 밥값이 싸고 비싸고의 문제가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펼쳐지는 수법인지라 쉽사리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편집증이라 불려도 할말 없는 이런 태도는 대학시절 경험한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스물을 넘긴 즈음, 인사동에 있는 꽤 유명한 밥집 겸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걸쭉한 사투리를 구사하던 지방 출신 중년부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좌식 방도 있을 만큼 꽤 넓은 식당이었다. 홀 담당 직원은 나와 또 다른 아르바이트생 달랑 둘 뿐이어서, 평일 저녁이나 주말 등 피크타임이 되면 우리는 뛰어다니며 서빙을 해야 했다. 음식 주문받고, 나르고, 치우는 게 주 업무였고 그것만 해도 정신이 없었다. 팔팔 끓는 뚝배기는 무겁기도 무거웠지만 자칫 화상을 입을까 봐 늘 긴장을 불러일으켰고, 단체손님이라도 지나가고 나면 혼까지 쏙 빠지곤 했다. 쟁반 가득 빈 그릇을 쌓아 들고 주방 앞에 갖다 놓으면 이후는 주방장 아주머니와 여자 사장이 처리했다.

역시나 정신없이 서빙하고 있던 어느 날, 한 남자 손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저기요, 이리 좀 와보세요." 심상치 않았다. "여기 이 깍두기 좀 봐요, 이거 이빨 자국이죠? 이거 먹던 거 내놓은 거 아니에요?" 손님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접시 하나를 밀쳐놓았다. 거기에는 물구나무를 서서 봐도 이 자국이 선명한 석박지 하나가 있었다. 나는 접시를 들고 남자 사장에게로 가져갔다. 흰머리가 성성하고 얼굴이 약간 사마귀를 닮은 남자 사장이 나에게 말했다. "가위 자국이라고 우겨. 가서 이거 가위로 자른 자국이라고 말해."

나는 순순히 손님에게로 가서 사장의 지시를 그대로 전했다.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이게 어떻게 가위 자국이에요? 사장 어딨어, 사장님! 일루 좀 와 봐요." 손님의 언성은 아까보다 높아졌다. 안 그래도 등이 약간 굽은 사장의 허리는 더 쭈그리가 되었고, 사장은 손을 비벼가며 호출 테이블로 향했다. 나는 바통 터치하듯 무심한 얼굴로 좀 전까지만 해도 사장이 지키고 있던 카운터로 돌아갔다. 과연 사장은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귀를 쫑긋 세우고 지켜보았다. 사장은 괜히 사장이 아니었다.

"아이고 너무 죄송합니다. 이게 다 저 아르바이트생 잘못입니다. 접시가 주방으로 들어가야 하는 걸 착각해서 다시 들고 나왔지 뭡니까. 이게 버려야 할 건데, 서빙이 됐으니 이거 너무 죄송해서 어쩌지요?" 어리숙하고 순진한 미소를 장착한 사장의 설명이었다. 순식간에 일개 알바생은 퇴식기와 배식기도 구분 못하는 멍청이가 되어 모든 잘못을 뒤집어썼다. 사장의 임기응변은 수초만에 만들어 냈다기엔 가히 놀라운 구석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위 자국이라고 우기는 것보다 백배 천배 설득력 있는 변명이었다.

"아르바이트생 잘못이라는 말씀이시죠?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앞으로는 주의 좀 해 주세요. 너무 불쾌하잖습니까. 그렇다고 사장님, 그 아르바이트생 너무 혼내지는 마시고요." 손님은 사장의 설명에 납득한 듯 이내 화를 누그러뜨렸고, 푼돈을 받고 일할 게 뻔한 어린 아르바이트생의 처지를 걱정할 만큼 여유를 찾았다.

카운터에서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죄송할 일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단의 원흉으로 몰렸다가 끝내 용서까지 받은 처지가 되었다. 만만한 아르바이트생을 팔아 위기를 모면한 사장의 임기응변은 놀랍도록 기가 막혔고, 그 와중에도 손님의 너그러운 마음씀은 고마웠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억울했다. 사장은 일을 매끄럽게 해결했다는 듯 더없이 흡족한 표정으로 카운터로 되돌아왔다. 손님의 당부대로 아니면 양심상 나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모르는 척 행주를 집어 들고 카운터를 벗어났다.


나는 한동안 식당에 가면 모든 메뉴를 다 시켜도 김치찌개만큼은 주문하는 법이 없었다. 아니 웬만해서는 식당에서 내오는 김치 종류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재활용 반찬이 김치류 뿐이겠냐마는 유난히 김치를 먹기가 꺼림칙했다. 비록 식당 김치에 대한 거부감은 예전보다 덜해졌어도, 여전히 식당에서 반찬을 집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의심과 불신과 찝찝한 마음은 지울 길이 없다. 그 날의 아르바이트생은 당연히 혼나지 않았지만, 일련의 경험은 편집증처럼 남아 결국 단체급식과 집밥에서 심리적 안도와 평화를 찾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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