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것들

by 김커선

1.

작년 5월부터였으니까, 일 년이 된 셈이다. 줄넘기 말이다. 고작 200그람 남짓한 줄 하나만 있으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상쾌 해진다. 하루 종일 방바닥에 붙어서 하루를 보냈더라도 걱정 없다. 줄넘기 돌리기 천 번이면 ‘그래, 오늘 뭐라도 했다’ 뿌듯함이 솟아나니 마음의 안도를 위해 이만한 약이 없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는 생활을 몇 년 하다가,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생활을 하다 보니 만성 소화불량증이 찾아왔었다. 생전 없던 일을 겪어보니 어떻게 큰 병이 난건가 어쩐가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 또한 노화의 한 증상이라 어쩔 수 없겠다 싶었다. 점심을 양껏 먹었다가는 오후 내도록 속이 부대끼고 트림이 올라오는 불쾌감에 시달렸다. 저녁을 늦게 먹은 날엔 잠자는 것마저 미뤄야 할 정도였다.

이럴 때면 으레 줄넘기를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간다. 한 개, 두 개, 세 개.. 200개쯤 하면 속에서 가스가 터져 나온다. 300개, 400개, 위를 비롯한 중초의 장기들이 출렁이는 게 느껴진다. 600개쯤에선 점차 속이 풀리기 시작하고 900개, 1000개에 이르면 비로소 속이 편안 해진다. 이제 자러 가면 된다.

다리며 팔뚝이며 근육이 단단하게 잡히기 시작한 건 예상치 못한 덤이다. 그간 여러 운동을 해봤지만, 그 어떤 것도 꾸준한 줄넘기만큼 근육을 만들어주진 못 했다. 무거운 상자도 번쩍 들어 옮기고, 종일 감을 따도 다음날 팔뚝이 뻐근한 거 없이 멀쩡하다.

어디 멀리 갈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줄넘기를 휴대한다. 자기 전 줄넘기를 하고 자야 속도 정신도 편안 해진다. 줄넘기야, 앞으로도 우리 주욱 함께 합시다.


2.

쌩하고 바람을 가르며 세종문화회관 앞을 지나간다.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내가 사랑하는 자전거 타기. 안장 위에 올라앉아 남들 걸을 때 그 옆을 쌩하고 지나가면,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 된 같은 착각마저 든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자전거로 통학한 덕분에 나는 자전거를 곧잘 탄다. 그 자신감으로 3주간 전국 자전거 여행도 하고, 우즈베크에서 한 달간 그리고 유럽에서 석 달간 자전거 캠핑여행을 하기도 했다.

서울에서도 심심하다 싶으면 자전거를 몰아 광화문 네거리로 나간다. 경복궁으로 덕수궁으로 이리저리 쏘다닌다. 생각이 많을 때면 으레 경복궁 돌담길 한편에 있는 나의 아지트로 향한다. 같은 자리를 백번이고 이백 번이고 빙글빙글 돌다 보면 돌담 길 너머 울창한 나무도 보이고 흘러가는 구름도 보이고 바람도 살랑살랑 느껴진다. 이 친구들은 한결같게도 어리석고 쓸데없고 그럼에도 지속되는 나의 고민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세월이 그냥 세월이 아니라니까. 십오 년 전, 같은 자리에서 했던 고민들이 슬쩍슬쩍 떠오르면 피식, 그때 그런 고민을 왜 했을까, 거봐 지나고 나니까 아무것도 아니었지, 다 길이 열리잖아, 그러면 새삼 마음이 가든해지고 용기가 생긴다. 자, 집으로 갈 시간이 되었구나.


3.

1킬로그램에 감자/당근 이백 원, 시금치 사백 원, 오이 오백 원, 체리 천 원, 버터 사천 원, 소고기 팔 천원. 우즈베키스탄에서 살 적, 퇴근 무렵이면 어김없이 시장에 들러 장바구니가 터지도록 먹거리를 싸 짊어지고 버스를 탔다. 수박이라도 한 덩이 사는 날에는 쉬었다, 갔다, 쉬었다, 갔다를 열 번 이상 반복해야 겨우 집에 이르렀다.

한식조리사 과정까지 수료했지만 나는 칼 잡는 법부터 영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자격시험에는 마땅히 떨어질 법도 했다. 그렇게 배워 둔 기술을 갈고닦을 절호의 기회를 우즈베키스탄에서 찾아냈다. 아무것도 없는 안디잔에서 어렵사리 발굴한 취미가 바로 이 요리였다.

나는 현지식도 무척 좋아했지만 아무렴 된장, 고추장을 먹어줘야 느끼한 속이 내려갔다. 드물게 있는 한식당은 너무 비싸서 나같은 가난뱅이는 쉬이 갈 수 없었다. 결국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내 손으로 해 먹는 수 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섭씨 40도를 거뜬히 넘어가는 뜨거운 햇볕 아래서 자란 우즈베크의 과일 당도는 멜론을 한입 베어물면 머리가 띵할 정도였다. 더욱이 정부는 국민의 반정부 정서를 잠재우고자 먹거리 물가를 강력히 통제하고 있기에, 천 원만 들고 나가도 신선한 과일이며 채소며 장바구니가 넘쳐났다. 나는 제철 먹거리를 잔뜩 사다가 자르고 볶고 지지고 내 입맛대로 요리하며 매끼 한상 그득 제대로 차려내 먹곤 했다.

그 습관이 귀국하고 나서도 이어졌다. 이제 웬만한 건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양파를 까고, 무를 자르고, 배추를 씻고 있노라면 덩달아 내 마음도 흙을 탈탈 털어내고 말간 얼굴을 들이미는 것 같다. 맛으로 따지면야 없을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배불리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게 만족스럽다. 게다가 재료를 다듬는 수고에 대한 대가는 하나의 음식으로 바로바로 나와주니, 요리란 나처럼 인내심 없는 사람들에겐 최고의 공정이라 할 수 있겠다.


4.

나는 진열장 가득한 약을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이 약은 어디 쓰는 물건인고, 어떤 성분을 담고 있으려나 궁금하다. 비록 당장 쓸 일이 없어도 약을 잔뜩 쟁여 놓고 때때로 열어보면 마음이 알게 모르게 넉넉해진다.

스물 초반 중도 작파했던 한약 공부를 다시 해보기로 결심하고 학교로 돌아갔다. 예전에는 분자생물학이니 생화학이니 대체 이걸 왜 배워야 하는지 당최 이유를 몰랐고 동기를 갖지 못해 자연스레 공부를 안 했다. 이제는 그것들의 쓸모를 확실히 알게되자 공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어릴 적부터 예스러움을 좋아했던 나는 이천 년이 넘은 이 학문에 자연스럽게 끌린다.

오늘 아침을 먹고 나서 갑자기 왼쪽 늑골 아래 부위가 이따금 아프기 시작했다. 당최 복통이라곤 겪어본 적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이건 뭐지? 증상을 이리저리 검색해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얼른 약장으로 가서 반하사심탕을 한 봉 꺼내 뜨거운 물에 타서 들이켰다.

반하사심탕은 반하, 황금, 인삼 등이 주성분으로 소화기 관련 염증질환에 널리 응용된다. 먹어 본 사람들은 기가 막혀한다는, 숙취에도 좋은 특효약이다. 요 앞서 해산물을 잘못 먹고 설사를 한 적이 있었다. 큰일이구나 오래가겠다 싶었는데, 반하사심탕 한 봉에 대번 설사가 멎어서 그 유효성에 무릎을 친 경험이 있었다.

반하사심탕을 복용하고 복통 증세가 사그라지는 듯 하더니, 기대와 달리 드문드문 증상은 여전했다. 4시간 뒤, 두 번째 약을 들이켜고선 햇볕에 나가 삼십 분 가량 앉아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난 지금, 증상의 70% 정도 경감된 듯하다. 스스로 몸을 살피고 그에 맞게 약을 복용해 보는 재미에 들려 이 맛에 한약을 공부하고 복용하고 있다.

나에게는 오랜 고질병이 하나 있는데, 수면이 부족하거나 혹은 무리했을 때, 소화기관 능력이 떨어지며 두통이 생기는 일종의 PMS 증후군이다. 한의약학에서는 수체증이라고 일컫는데, 세포 간질액 사이에 수분이 과도하게 저류 되어 순환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이 때는 택사, 복령, 저령, 계피 등이 들어간 오령산이 유효하다. 원래는 증상 전후로만 복용했었는데, 호전되는가 싶다가 수면부족이 되자 다시금 수체증이 도졌다. 사흘 고생한 뒤로는, 최소 하루 두 번은 복용하고 컨디션이 좀 떨어진다 싶으면 횟수를 늘린다. 그러자 확실히 무리한 다음날에도 예전보다 머리가 가볍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실생활에 곧장 적용해 볼수 있다는 것, 나처럼 효용성/효율성을 극도로 따지는 이에게 한약은 참으로 가성비 넘치는 학문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좋은 한약을 사람들이 널리 두루두루 복용했으면 좋겠다. 그러자면 나 역시 산처럼 공부해야 한다. 전통 과목 공부야 기본이고, 현대 생의과학분야도 잘 알아야 한다. 한의약학에서 두루 쓰이는 용어는 이제 현대인들에게 외계어처럼 들린다. 이를 현대인들에 걸맞는 용어로 다시금 풀어내야, 사람들이 한약을 쉽게 이해하고 보다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이면 파릇파릇 돋아나는 약초를 돌보는 재미가 있다. 철마다 앵두도 따 먹고, 살구도 따 먹고, 나뭇잎 아래 앉아 커피도 한잔하면 신선놀음 부럽지 않다. 비대면 수업 때문에 한동안 학교 약초원에 들르지 못했다. 조만간 앵두 철이 다가오면 앵두 서리를 하러 살금살금 약초원에 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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