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넘기로 삶의 지혜를 배운다
'어라, 벌써 10시 넘었다고? 잘 시간이고만' 이후로도 한참을 미적거린다. 씻고 바닥 닦고 이불 펴고 하는 거야 금방인데 어째 벌떡 일어나지를 못한다. 왜냐, 아직 중요한 일과가 하나 남아있거든. 바로 줄넘기 말이다.
작년 봄부터 매일 줄넘기를 해 오고 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주로 집에서 머물다 보니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이 필요했다. 그간 10종도 넘는 운동을 해 봤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가성비 운동은 줄넘기였다. 짧은 시간 안에 이만큼 심장 벌렁거리고 재미있고 전신을 자극하는 운동이 없는 것 같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날씨, 시간에 구애받지 않을뿐더러, 요즘에는 줄 없는 줄넘기도 나오니 흙바닥이든 어디든 장소가 마땅찮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경제적 부담? 줄넘기 하나 사면 끝! 이렇게 완벽한 운동이 있나, 나는 평생 할 요량으로 줄넘기를 낙점했다.
이렇게 완벽한 운동도 꿰어야 서말, 안 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나는 매일 줄넘기를 1000개씩 하기로 결심했다. 운동을 꾸준히 하려면 절대 무리해선 안 된다는걸 온몸으로 깨달으며 설정한 적정 목표량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하자 하자 다짐은 했는데, 막상 궁둥이가 생각처럼 쉬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오늘은 진짜 너어무 피곤하데 하루쯤 건너뛰어도 되지 않을까, 아까 낮에 충분히 걷고 자전거도 오래 탔는데 오늘 운동은 그걸로 퉁칠까, 벌써 자정이라니 얼른 자야 돼 운동하고 뭐하고 나면 너무 늦다니까 이러면 낼 못일어나... 똑같은 시간,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핑계를 나는 지치지도 않고 매번 반복해 대고 있다. 줄넘기가 좋은 줄 너무 잘 아는데, 막상 하면 뿌듯할 거라는 것도 아는데, 그걸 하러 가기가 왜 이리 귀찮은지 모르겠다. 갈등할 시간에 차라리 얼른 나가서 줄넘기를 퍼뜩하고 오는 게 빠르다는 것도 아는데, 왜 이리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인지.
한동안 밀당을 주고받다가, 드디어 나의 뇌를 속일 방법을 하나 찾아냈다. 생각보다 뇌는 아주 순진한 녀석이었다. "야야야 됐고, 그냥 깔끔하게 오 백개만 해." "뭐라고? 달랑 오백 개? 진짜지?" 오백 개만 하면 된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몸을 벌떡 일으킨다. 줄넘기 오백 개야 완전 껌이지. 아무리 미친 듯이 졸리고 피곤해도 까짓것 줄넘기 오백 개 하는 데는 5분도 채 안 걸린다. 그까짓 거, 줄 몇 번 돌리면 금세 오백 개지 뭐. 망설일 게 전혀 없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줄넘기를 챙겨 들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오가는 사람들이 안 보일 만한 기둥 뒤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줄넘기를 시작한다. 한 개, 두 개, 세 개,... 백개, 이백 개, 목표량은 멀지 않다. 돌리는 줄이 생각보다 가볍다. 그러는 와중에 뭐야 벌써 오백 개야? 이거 너무 싱겁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귀찮고 피곤하고 부담스럽다는 마음은 어느새 온 데 간데 없이, 관성의 법칙에 이끌려 계속 줄을 돌리고 있다. 그래 백개만 더 하자. 1분이 채 안 걸린다. 왠지 이대로 끝내기가 아쉽다. 그러면 계속하지 뭐. 팔백 개쯤 이르면 이제 천 개 채우기는 재미로 하면 된다. 구백구십구, 천! 어라 뭔가 기운이 남아도는데. 그럼 줄이 발에 걸릴 때까지 해보지 뭐. 숨이 턱끝에 차도록 계속 하고픈 마음이야 굴뚝같은데, 그걸 억지로 주저앉히고 적당한 시점에 줄넘기를 끝낸다. 컨디션이 좋다고 운동을 계속하다간 자칫 몸에 무리가 온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줄을 챙겨 들고 더워진 몸을 식히러 바깥공기를 쐬러 나간다. 좀 전까지만 해도 춥기만 하던 밤공기가 그렇게 시원하고 반가울 수 없다. 나는 깡충깡충 계단을 뛰어올라 집으로 돌아온다. 자, 하루 일과가 모두 끝이 났구나. 오늘도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한 심정을 안고 마침내 잠자리에 들 수 있겠다.
시작이 망설여진다고? 그럼 작게 시작해. 지금 너무 잘하고 싶어서, 완벽하고 싶어서 그래서 엄두가 안 나는걸 수 있어. 당장은 잠깐만 들여다보겠다고, 십 분의 일 정도만 시도해 보겠다고 결심해. 뇌는 아주 순진해서 이러면 별 저항감이 없을 거야. 근데 막상 해 보잖아, 우려하던 것만큼 부담 가졌던 것만큼 그렇게 거대한 일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될 거야. 그땐 힘닿는 대로 계속해 가면 되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