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과거가 후회될 때

by 김커선

아무 할 일 없이 잉여롭게 누워 있다 보면, 내가 지나온 일들이 떠오르고 그때 그 선택들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부지가 고향에 남는 대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서울로 이주를 결정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무렴 수도 서울은, 경북 삼대 오지 가운데 하나인 봉화와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난다. 넓은 물에서 우수한 교육환경에서 자랐더라면, 나는 재능을 좀더 발휘하지 않았을까. 왜 아부지는 젊은 시절 좀 더 진취적으로 결단 내리지 못하셨을까.

그때 공립 A여고가 아니라 사립 S여고를 선택했더라면 여러모로 나았을 것이다. 괜히 명문이랍시고 A여고로 진학했다가 후진 시설환경, 학생들에게 무관심한 공립학교 선생들 속에서 별 도움도 받지 못한채 일 년 반 동안 좌절감만 키웠던 것 같다. S여고는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겠다 약조도 했었는데, 아무렴 명성보다는 실리를 선택했어야 했다.

아주 이른 아침 매점에서 따끈따끈한 두유를 한 병 사다 말고, 하나 더 살까 어쩔까 망설였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밤을 새운 게 틀림없는 그 친구를 위해서였다. 사이가 멀어져서 이젠 인사도 안 하는 사이가 돼버렸지만,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멈칫하는가 싶다가 나는 그냥 매점을 빠져 나왔다. 만약 모르는 척, 지친 친구에게 따끈한 두유 한 병을 건넸더라면 친구는 다시 나에게 말을 걸어왔을까.

훗날 엄청나게 승승장구한 여자 부장님 한 분이 신입사원이던 나를 아끼는 눈치였다. 주변 험담에 휘둘려 부장님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부장님의 총애를 등에 업었더라면 나는 직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 팀에서 분란이 촉발되었을 때 중립을 지켰더라면, 퇴사결심은 늦추어 졌을까.

여행을 멈추지 않고 예정대로 브라질로 날아갔더라면, 코로나 대유행이 닥치기 전에 아메리카 대륙을 샅샅이 여행하며 얼마나 새로운 모험기를 써냈을까. 할머니 병간호 때문에 귀국하지 않고 그래서 병원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내 몸도 마음도 지금보다 더 건강하지 않았을까.


나는 엄지에 낀 은반지를 빼내 뱅글뱅글 돌려가며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짜 보고 있다. 만약 그랬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당시에는 사소해 보였던 선택이, 이제 와서 보니 인생 방향을 휙휙 틀어놓은 것마냥 엄청나게 중요한 순간처럼 느껴진다.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 나는 더 나아져 있을까. 더 부자이고, 더 똑똑하고, 더 안정된,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겠느냐 말이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이 자꾸만 과거로 과거로 늪에 빠진 것 마냥, 지금의 내 발목을 잡고서 끌고 들어가고 있다.

온갖 상념 속에서 허우적대다 애써 의식을 되찾으며 한 마디를 내뱉았다. "지금, 살아 있으면 됐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다. 삶에서 인생에서 살아 있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는가? 과거 어느 순간에 어떤 근사해 보이는 선택을 했다 한들, 지금 살아 있을지 아닐지는 절대 확신할 수 없다. 다 필요 없고,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엄연한 사실, 그 사실 하나면 게임은 끝이다.


"교수님, 요즘 이런저런 상념들이 많이 드는데요. 자꾸만 과거일들을 떠올리고 그때마다 후회스러운 감정이 드네요." 무더위가 한창인 때, 바람이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존경하는 한방 병리학 교수님을 붙잡고 이렇게 여쭤 본 적이 있었다. 교수님은 느릿한 말투로 딱 한 마디를 하셨다. "그건 네가 지금 현실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야." 차가운 물줄기가 머리위로 쏟아지듯, 실제 맞아 본 적은 없다만 방망이로 뒤통수를 가격 당한 듯 잠깐의 충격을 느꼈다. 정확했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섣불리 시작하지 못하는 나, 완벽하게 해 내고 싶은데 기억력도 이해력도 한참 떨어져서 계획과는 어그러져 버벅대고 있는 나, 현재 나의 가장 큰 문제는 과거 따위가 아니었다. 지금 나 자신이, 나의 태도가, 내 성에 영 차지 않는 것, 뺀질대고 있는 나를 두고 보기가 괴로운 것 이게 문제의 핵심이었다.


불교의 연기론에서는 이것이 있음으로 인해 저것이 생긴다는 인과 법칙을 설한다.

니체는 영원회귀에서 말한다. "이 세상이 일정한 크기의 힘과 일정한 수의 힘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면, 존재의 거대한 주사위 놀이 속에서 계산 가능한 수의 조합들을 계속 되풀이하는 수밖에 없다..."

후회의 구덩이로 스스로를 몰아넣은 줄로만 알았던 과거의 순간조차 모두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주사위가 달라졌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다른 존재가 되었을 수도 있고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나온 사건을 회상하며 글을 쓰다보면, 미처 그 때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 숨겨진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과거에 일어난 팩트는 어떻게 해석하느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지금 나의 태도에 달려있다. 해석이 달라지면 과거란 더 이상 내가 알던 예전의 그 과거가 아니게 된다. 만약 내일 거기서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해 낸다면 과거는 다시 변하겠지. 결국 과거를 재구성하는 힘이란 현재의 나에게서 나올수 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현재 이 자리에 발을 딛고 서서 게으르지 않고 해야 할 바를 차근차근해 나가는 것이다. 어제가 될 오늘을 생각한대로 살아내는 것, 내가 과거를 바꿀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다. 어제보다 오늘 더 성장하고 내일은 또 달라져 있으리라.

지금 살아 있으면 됐다. 살아 있다는 것으로, 과거 모든 발자국에 대한 갈음이 된다. 살아 있으니 나는 이 좋은 봄날, 흩날리는 벚꽃눈을 맞으며 몸을 흔들고 노래를 부르고 깔깔 배가 찢어지도록 웃어댈 수 있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순진한 내 뇌를 속이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