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급성요통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잔차를 탄다, 빨래를 한다 어쩐다 설쳐댄 날이 있었다. 별로 무거운 것도 아닌데 빨래통을 들어 올리는데 그만 허리가 뚝했다.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아야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한약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호전되나 싶었다. 한 20% 정도의 증상만 남았던 또 다른 일요일 어느 날이었다.
잠깐 쭈그려 앉았다가 일어나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허리가 나가고 말았다. 지난번과는 다른 차원의 고통이 찾아왔다. 앉지도 눕지도 서 있지도 못하는, 어떤 자세를 취해도 곧이어 극심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양말을 신지 못할 만큼 허리는 아예 굽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아플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한동안 고통스러운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스스로를 약하다고 여겨왔는데 생각해 보니 두통만 가끔 겪었지 크게 아픈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두통이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질병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웬걸, 허리가 한 번 아파보니 이건 차원이 다르구나 싶었다. 하기야 고통스럽지 않은 질병이 있겠냐마는 아무튼 당장은 요통만큼 괴로운 게 있나 싶었다.
급작스레 찾아온 요통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침을 맞기도 하고 적절한 한약을 이것저것 찾아 복용해 가며 몸의 변화를 관찰했다. 다행히 치료법들이 유효했고 어제부터 증상이 급격히 호전되어 현재는 증상의 95%가 소실된 상태다.
지금이야 웃으며 이렇게 글을 적지만 화요일까지만 해도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고통에 시달렸었다. 생각해보면 이번 위기를 통해 나는 요통환자의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상담기록서에 응 '요통' 이렇게 적을 줄만 알았었다. 어떤 종류의 고통인지, 환자의 QoL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한약이 최고로 빠르게 유효할지 진심으로 마음까지 기울인 적이 없었다.
늘 생각하지만 아프면 겸손해진다. 건강을 자신하지 말고, 몸을 무리해서 사용하지 않고, 늘 근신하고 관찰하며 신체를 귀하게 여기는 일이 필요하겠다.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그랬다. "기회는 찬스다!" 이 뭔 웃기지도 않는 동어반복인가 어이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위기야말로 찬스”라 말할 수 있겠다.
요통을 겪은 덕분에 이렇게 맘껏 누울 수 있고 앉을 수 있고 서서 걸을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절절히 깨닫고 있다. 감사한 일이 늘어갈수록 마음은 바닥으로 내려앉는 느낌이 든다. 내 에고가 바닥에 있을 때야말로 가장 안정된 느낌이 드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