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내가 갖지 못한 면을 가진 사람일수록 난도는 더 올라간다. 예상 밖의 반응을 마주할 때면, 내 상상력의 폭이 얼마나 좁았는지 뼈저리게 안다.
나는 그간 타인을 거의 직관으로만 다뤄왔다. 느낌으로 판단해 놓고, 그게 전부인양 여겼다. 알고 보면 나는 '이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붙잡아본 적이 없었다.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물론 필요조차 품어 본 적이 없었다는 걸 뒤늦게야 알았다.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만도 이십 년이 넘게 걸렸다. 맨날 지지고 볶고 붙어 산, 이 나라는 인간이 뭔지, 그 첫 질문을 던지고서 한참 만에야 답을 겨우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니 남을 쉽게 안다고 믿었던 게 얼마나 오만한 일이었나 싶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한다. 빠르게 걷는 사람과 느리게 걷는 사람이 있다면, 결국 속도는 느린 쪽에 맞춰야 한다고. 이해도 그렇다. 앞서 가고 싶어도, 끝내는 상대의 속도 위에서만 만날 수 있다.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온전히 닿지 못할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다가가 보려는 마음, 그 종종 대는 마음이 결국 내 세계의 지평을 조금씩 넓힌다. 심연처럼 깊고 대양처럼 넓은 누군가의 세계와 만나려면 결국 함께 흐르는 수밖에 없다.
이해의 문 앞에서 한계가 느껴질 때는 시간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끈을 놓지 않고 머물다 보면, 어느 날 불쑥 깨닫는 순간이 온다.
"아, 이런 마음이었겠네."
시간은 결국 우리 마음속에 포용과 여유의 씨앗을 심어,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이해'라는 결실로 키워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