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눈은 붙박이라 정작 가장 중요한 자신을 볼 수 없다. 거울을 들여다봐도 조명이나 각도가 달라지면 얼굴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영상도 마찬가지다. 화각과 렌즈가 나를 번번이 바꿔 놓는다. 설령 나를 온전히 담아낸다 해도 외양에 불과하다. 내면까지 비추는 도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눈빛에 새어 나오는 무언가를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관계는 어쩌면 선택이 아니라 불가피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혼자서는 나를 확인할 길이 없으니, 결국 사람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본다. 우리는 서로에게 거울이 된다. 나는 나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반사면이다. 내가 어떤 태도로 말하고 어떤 온도로 행동하느냐에 따라 상대의 얼굴과 마음도 달라진다. 그러니 마음을 함부로 낼 수가 없다.
산간 암자에서 몇십 년 도를 닦은 사람이라 해도 현실에 내려와 며칠만 살아보면 알게 된다. 머리가 아프고, 화가 치솟고, 내 마음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혼자 있을 때의 평화는 비교적 쉽다. 그러나 타인 속에서 평화를 지키는 일은 다르다. 관계 안에서 드러나는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혼자 앉아 수행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지난하다.
관계는 생각보다 강한 흔적을 남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는다. 그러니 어떤 거울을 곁에 둘지는 신중해야 한다. 나를 왜곡시키는 거울 앞에 오래 서 있을 필요는 없다. 나를 흐리게 만드는 관계에 마음을 계속 내줄 이유도 없다.
나는 당신의 거울이고, 당신 역시 나의 거울이다. 그래서 내 마음을 경솔히 낼 수 없듯, 타인이 낸 마음도 덥석 받지 않는다. 나를 정직하게 비추되,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라보게 하는 거울. 그런 거울을 곁에 두는 일은 나를 존중하는 방식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거울 쪽에 서 있으려 한다. 관계라는 세계에 이제서야 발을 들인 내가, 지금 택한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