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속도위반으로 너무 성급하게 결혼, 출산을 정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평소에 결혼관이나 양육관 등이 특별히 없었는데, 속도위반으로 갑자기 생의 큰 결정을 해야 할 상황에 놓였어요. 성급하게 결정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돼요.
A. 비교적 어리지 않은 나이이다보니 결혼이나 임신, 출산에 대해 생각할 기회는 많았던 것 같아요. 다만 그런 인생의 중요한 결정이 언제나 제 우선순위는 아니었죠. 특별한 계기가 없는 결혼, 출산에 대한 생각은 나와 가깝게 지내는 여성인 엄마의 삶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도 그랬고요.
그리고 숱한 고민이 들겠지만 결혼, 출산은 결국 부딪혀봐야 알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물론 배우자가 신뢰할 있는 사람이고 여건이 따라야 하겠지만요.
"일 하다 힘들면 '취집'하면 되지, 뭐."
스물다섯을 넘기면서,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 '고전'처럼 등장하던 화두가 있었다. 다름 아닌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와 결혼이었다. 밥벌이의 고됨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어떤 그룹이든 남녀 불문하고 한 명은 꼭 이렇게 대응했다.
이 말이 성차별적 발언이라는 사실을 덮어두더라도, 나는 이 말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자신의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선택지'가 있음을 전제하고 있는데, 별로 동의가 안 되기 때문이다. 내게 경제 활동은 내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이자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채우는 통로다. 배우자가 이 수단까지 책임지는 건 어쩐지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결혼을 하더라도 일은 내게 '기본값'과 다름없었다.
사실 이 ‘기본값’은 내가 어릴 때부터 보고 겪은 환경과 관련이 깊다. 친정 엄마는 두 살 터울의 나와 오빠를 키우면서 장남인 아빠의 가족까지 챙기며 가사와 회사 일을 동시에 했다. 경제적 기반을 어차피 개인이 책임질 거라면, 굳이 결혼을 이유로 배우자의 가족과 집안일까지 하면서 여러 군데로 힘을 분산시킬 필요가 없었다. 연애할 땐 안 그랬는데 살아보니 다르더라 하는 식의 '카더라'도 선뜻 결혼을 결정하지 못하게 했다.
여기에 출산까지 하면, 말 그대로 여성 개인의 삶은 더욱 쪼그라들게 된다. 임신과 출산만 여성을 통해 이뤄지는 줄 알았는데, 아기를 낳고 보니 3개월 동안은 엄마의 젖으로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아이가 성장하며 겪는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체로 엄마를 탓하는 사회적 분위기까지 고려하면 임신, 출산의 짐은 하나의 이벤트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다. 아침에 출근하다 핸드폰을 두고 와서 집에 들른 것만도 수백 번인데, 이런 내가 누구를 키울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상이다. 섣불리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결혼과 출산을 언제까지나 미뤄 왔다. '지금은 아니'라는 식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남자 친구와 보낸 시간이 더 많았으므로 가능성은 대체로 열려있었지만, 언제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한 사람과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 그리고 그 결실로 결혼을 택하는 일이 내게는 일어날 것 같진 않았다. 드라마는 극적인 연출을 위해 현실을 취사선택하는 대표적인 장르니까. 여기서 집 마련, 임산부가 겪는 고통 등 실제로 우리가 관심 가질 만한 결혼, 출산에서의 화두를 올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연한 두려움은 있었다. 출산을 '제 때' 하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은 불안함이 그것이었다. 어떤 만화책이었나. 매달 월경을 하며 울적해하는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다. 월경은 한 달에 한 번 배란되는 난자가 정자를 만나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일인데, 자기만의 할 일이 있는 난자가 매달 쓸모없이 버려지는 게 울적한 이유였다. 굉장히 자조적이기도 한 내용인데, 나 역시 그 만화를 읽으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나의 난자도 평생,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는 존재인지 모른 채 평생 버려지게 되는 건 아닐까.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배웠던 난자의 탱글탱글한 모습이 떠오르면서 왠지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부모님조차 내게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는데, 내 한 몸만 건사하면 되는 자유로운 생활에 만족하면서도 알 수 없는 초조함에 시달렸다.
이렇듯 평소에 마지못해 열어 뒀던 임신과 출산에 대한 가능성이, 아이의 존재를 알았을 때 낳아야겠다고 결심했던 계기가 됐다. 출산을 결정하자 알 수 없는 의무감에서 해방된 느낌조차 받았다. 이런 모든 일을 사랑하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날들을 얘기하면서 하나씩 준비할 법도 했지만, 그러기에 결혼과 출산은 모두 내가 여성이어서 치러야 할 '비용'에 가까웠다. 아이의 존재는 이런 내 등을 떠밀어 준 존재였다.
1. 여성을 곧 '엄마'로 규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미혼 여성들의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하철에서 모두에게 불쾌감을 안겨 주는 중년 여성을 보면서 '저 사람도 누군가의 엄마일 텐데...' 하는 식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복장, 소지품 등에서 상대방의 사회적 지위를 가늠할 단서가 없다면 중년 여성은 으레 엄마이겠거니, 중년 남성은 한 회사의 관리직이겠거니 하는 식의 생각도 따지고 보면 편견에 가깝다. 엄마가 아닌 중년 여성의 사회적 성취나 개인 삶의 활약이 사회에 좀 더 많이 알려질 필요가 있다.
2. 통계청의 ‘7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해 1∼7월 누적 혼인 건수는 12만 6367건으로, 1981년 통계 작성 이래 1∼7월 기준 최저치다. 올해 합계출산율이 0.9명으로 1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이런 현실은 결혼, 출산을 망설이거나 미루는 여성이 나 말고 또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