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공기마저 상쾌하던 느낌은 잠시
Q. 육아휴직이 거의 끝나가요. 복직하면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A. 저도 가장 고민되는 점이었어요. 휴직에 들어갈 때의 저와 복직할 때의 저는 분명 같은 사람인데, 과연 그 일을 예전처럼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죠. 결과적으로는 가능한 일인데, 업무 공백 기간 동안 바뀐 업무 프로세스를 익히는데 시간이 좀 필요해요. 하지만 조바심내지 않고 기억을 더듬다 보면 언제 버벅댔냐는듯 잘 적응하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왠지 자꾸 소외되는 기분은 그저 기분 탓?
어차피 한 군데 ‘몰빵’ 어려운 처지… 시키는 일이라도 열심히
6시 30분, 눈이 번쩍 떠졌다. 벌떡 일어나 옆을 봤다. 아기는 아직 한참 꿈나라였다. 살금살금 방을 나와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어제 자기 전에 골라놓은 옷들이었다. 옷에 뭐가 묻진 않았는지, 혹시 작아진 건 아닌지, 고르고 골라서 점잖은 분위기의 남방과 검은색 바지를 골라 놨다. 아기가 깰 것 같아 조용히 문을 열고 집 밖을 나섰다. 11월의 공기가 맑고 깨끗하게 느껴졌다. 9개월의 공백을 깨고 나온 첫 출근길이었다.
답답하다고 느꼈던 사무실은 집중하기 좋은 환경 같이 느껴졌다. 복직 후 부서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점심을 먹은 뒤 휴게실에서 선배 워킹 맘들과 10분 정도 수다를 떨었다. 집에서 혼자 점심을 빠르게 해결하고, 서둘러 아이 입에 젖병을 물리던 게 불과 지난주의 일이었다. 갑자기 내가 보모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사회인’이 된 것 같았다. 내 자리가 있고, 내가 버는 돈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효능감은 생각보다 정신건강에 꽤 도움이 되는 감정이었다.
들뜬 마음은 이내 내가 앞으로 맡을 업무를 확인할 때 가라앉았다. 기존에 맡고 있었던 일이 전부다 내게로 돌아오지 않고, 일부만 돌아왔기 때문이다. 업무분장 표를 본 한 선배는 내게 그 표가 다소 충격적이었다는 말까지 했다. 기존에 했던 일 중을 다 주지 않은 채 다른 남자 직원에게 남겨둘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었다.
9개월은 아기를 돌보는 데 짧은 시간이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한 신입 직원의 업무 처리 성향을 파악하고 프로세스를 익히게 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사소한 잡무 하나조차 신입 직원에게 물어봐야 했고, 내가 휴직하기 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하나하나 대조해야 했다. 신입 때는 빠릿빠릿하게 처리할 수 있던 사소한 업무를, 그 프로세스를 다시 떠올리고 이행하는 과정이 ‘렉’ 걸린 컴퓨터처럼 더디고 느렸다. 내가 아이를 낳으면서 기억력도 같이 낳았던 걸까.
내가 느낀 묘한 박탈감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우연히 다른 부서의 선배 워킹맘과 밥을 먹으면서 알게 됐다. 그도 일하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복직 후 자신 밑으로 들어온 빠릿빠릿한 남자 후배가, 남자인 자신의 상사와 담배 한 번만 피고 오면 자신이 모르던 일이 진행돼 있었다고.
"그거 가지고 내일 외근 가면 돼." "네, 내일까지 드리겠습니다." 이런 대화에서 '그거'가 뭔지, 내일 어디로 외근을 가는지, 내일까지 '뭘' 드리는지 그 선배는 모르게 되는 식이었다. 선배는 내용을 모르니 중간에 끼어들기 조심스럽고, 그러다 보니 중요한 일을 자꾸 놓치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업무에서 자신이 배제되는 듯한 소외감으로 이어진다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그 원인을 우리가 최근 겪은 변화에서 찾게 됐다. 수시로 연차를 내고 아기를 돌보러 가야 하는 워킹맘에게, 일부러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으려는 이유는 아닐까.
내 한 몸 건사하면 되는 시절이었다면, 이런 상황에 펄쩍 뛰면서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욕심과 타협해야 했다. 향후 5년간의 내 목표는 회사에서의 인정이 아니라, 아이와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투잡’을 뛰는 워킹맘이 주 5일이나 묶여 있는 회사 일에 욕심을 내면, 추가 근무를 하거나 사내에 영향력 있는 인물과 일부러라도 가깝게 지내야 했다. 어느 쪽이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더 확보하지 못하게 하는 방향이었다.
무엇보다 일과 육아만으로, 개인의 삶이 행복해지지 않을 것만 같다. 한 회사의 직원, 한 아이의 엄마라는 역할 모두 내 삶의 행복을 결정짓는 요소이지만, 나는 그런 역할만으로 행복해지지 않는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원하는 공부를 하고, 원하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며 감흥에 젖을 때 나는 ‘나다움’을 느끼는 종류의 사람이다. 그래서 한 언론사에서 진행하는 리뷰 서포터스에 지원해 3개월 동안 활동하고, 컴퓨터 활용능력이나 한국사 등 자격증을 따면서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려고 노력한다.
복직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여러 결제 업무에 내 흔적을 남기면서 업무 흐름을 파악해 가고 있다. 퇴근하면 아기를 하원하고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운 뒤 새벽에 일어나 책을 보거나 자격 공부를 하는 일상도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상사는 얼마 전에는 내 일을 다른 사람의 업무로 착각해 그에게 내 일을 줬지만, 이내 그 사실을 깨닫고 다시 내게 일을 줬다. 콧방귀를 한 번 뀌었더니 이내 마음이 편해졌다. '영역 표시'는 확실히 해야겠지만, 그 이상 내 영역을 넓히지는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