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아들을 둔 부모의 아픔을 그린 '러덜리스'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러덜리스>는 묻어둬야만 했던 슬픔이 음악을 통해 밖으로 표출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개인 고유의 슬픔이 다른 사람의 그것과 비교되거나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 샘이 그랬다. 샘은 대학에서 총기 난사로 친구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아들을 뒀다. 그의 죽음을 마음껏 애도하지 못했다. 그는 세상과 벽을 둔 채 자유롭게 살아가다 아들 또래의 한 뮤지션을 만나 세상과 다시 소통하게 된다.
영화에서 음악은 주인공의 슬픔을 환기시켜 극복하게 하는 매개다. 아들의 노래로, 또래의 뮤지션과 호흡하며 그는 아들을 다시 만나는 듯 했지만 그는 이내 그들과 아들은 다른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준 상처를 사과하고 자신 때문에 음악을 중단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친구들을 죽인 아들의 과오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고, 그저 자신의 상처를 핥기에 바빴던 음악하기 이전의 샘과는 달라진 행동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샘이 아들에게 바치는 4여 분간의 노래는 담담하고 부드럽지만, 왠지 모르게 관객을 먹먹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노래가 끝난 후 흐릿하면서도 평온해 보이던 주인공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는 아들의 부재가 줬던 상실감과 박탈감을 받아들이고, 부모된 입장이 느낄 책임감을 떠안을 준비가 된 것만 같았다.
샘이 속한 밴드의 이름이자 영화 제목인 '러덜리스(rudderless)'는 '키를 잃고 어쩔 줄 모르는'이란 뜻의 형용사인데, 아들을 잃은 샘의 상태를 잘 대변하는 제목인 듯 하다. 때로는 어떤 위안이나 실질적인 보상보다 한 줄기 선율, 혹은 한 마디 노래 가사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이 영화는 그런 음악의 힘을 자연스러운 연기와 뛰어는 연주 실력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총기 사건 장본인의 부모라는, 스스로의 슬픔보다 사건의 희생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 우선인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도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