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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그녀와 그의 교감이 주는 의미

지향해야 할 '우리' 모습 담은 영화 '어스'

by 안녕하세요


조던 필 감독은 영화 <어스>에서 여러 종류의 '우리' 모습을 보여줬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우리'는 주인공의 가족이다. 주인공 애들레이드와 그의 남편, 딸과 아내로 이뤄진 이 가족은 자신들의 도플갱어를 물리치면서 영화를 이끌어 간다. 두 번째 '우리'는 애들레이드의 도플갱어 가족이다. 애들레이드의 도플갱어 '레드'가 이끄는 이들은 각각의 가족 구성원과 연결되는 또 다른 존재로서 레드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이 두 가족은 각각의 가족을 지키거나 혹은 복수하기 위해 서로의 가족을 해친다. 애들레이드의 가족은 지인의 도플갱어까지 그들의 손으로 처단하기까지 한다.


세 번째 '우리'는 복제실험을 당한 후 버려진 레드 같은 이들의 집단이다. 이들은 정체 모를 지하 기지에서 정치적 이유로 복제됐다가 필요가 없어진 후 버려진 이들이다. 태생이 외부의 집단에 의해 결정됐다는 점에서 '주류의 외부'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이들은, 레드가 주도하는 복수극에 가담함으로써 지상 인간에게 복수하는 주체인 '우리'로 거듭난다.


근데 여주는 싸움을 왜 이렇게 잘하나요...


마지막 '우리'는 복수를 마친 후, 자신의 실체를 깨달은 애들레이드가 자신이 지상에서 나은 아들 제이슨과 눈빛을 교환한 후에 완성된다. 유년기를 지하의 어두컴컴한 곳에서 보내온 애들레이드의 존재를, 유년기부터 지상에서 살아온 제이슨이 긍정하면서 이들은 새로운 '우리'가 된다. 제이슨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자신의 도플갱어 대신 지상에 나온 자신의 엄마를 긍정한다.


엄마와 나눈 교감이 부모와 자식 사이의 속성이든, 휴가 기간의 기괴한 경험을 공유한 유대감이든 상관없다. 그보다는 태어난 곳이 지하와 지상으로 각각 다른 두 존재가 서로의 실체를 알고도 긍정했다는 점이 중요해 보인다. 필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영화의 주제의식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미국은 모든 사람이 평등한 곳이지만 그것은 피비린내 나는 대량학살 하에 일군 것이다." 그는 애들레이드 모자가 서로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민족 침략에 따른 복수를 예고한 예레미야 11장 11절. '우리'의 외부에 있는 이들이 내부에 있는 이들에게 주는 경고 메시지 같다.

영화 곳곳에서는 1986년에 기아 구제 캠페인으로 열린 '위아 더 월드' 행사가 나온다. 당시 이 캠페인이 미국 외부의 소외된 집단을 포함시키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지하에 버려진 이들은 국가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까지 갈 일도 없이 한국 사회에도 '우리' 안에 포함되지 못한 존재가 많다. 정규직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기간제 노동자, 원청의 '갑질'에 시달리며 생의 절벽까지 내몰린 하청 노동자, 부모와 자식으로 이뤄지지 않은 노인/여성/청년 등의 1인 가구까지... 사각지대에 선 이들이 궁지에 내몰린 후의 선택은, 지상의 도플갱어와 자신을 맞바꾼 애들레이드의 행동과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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