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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래서 '미륵'은 악마인가 악신인가

기독교 세계관과 불교 세계관 융합에 실패한 영화 <사바하>

by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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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바하>는 한국의 주류 종교인 불교와 기독교의 시선을 빌려 종교의 본질에 대해 묻는 영화다. 감독은 주인공인 박목사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인간 세상에는 혼란스러운 일이 이렇게 많은데, 또 절대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순이 이렇게 많은데 신은 왜 침묵하고 있느냐고. 이 질문은 모태 신앙이었던 내가 신앙 활동을 이어가지 않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고, 오래전 유행했었던 소설 <퇴마록>에서 박신부가 가졌던 의문이기도 하다.


사실 이 질문은 기독교적 세계관에서는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쟁점일 것 같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와 악마 등 전반적인 세계관에서 선악이 뚜렷하게 구분돼 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악은 절대자인 예수 그리스도와 여호와에게 패배한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퇴마 등의 오컬트 영화가 악령을 명확한 악으로 내세우고, 예수의 이름을 빌려 악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는 서사가 다수를 차지하는 이유도 기독교적 세계관이 주는 선명성이 있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영화는 이 세계관과 배치되는 논리를 제시해 관객을 혼란에 빠트린다. 해안스님의 말을 빌린 불교의 논리가 그렇다. 세상에 악귀는 없고, 굳이 있다면 인간의 욕정이나 탐욕일 뿐이라고. 그러니 원래는 악신이었던 사대천왕을 섬기는 사실만으로 이를 이단이나 악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고. 이런 설명은 영화에 등장하는 의문의 존재에 신비함을 부여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보여주고자 하는 대상의 선악구도가 모호해져 관객은 등장인물(혹은 괴물)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처음에는 절대 악인 줄 알았던 '그것'의 존재가 무엇이었는지 의문이 남았던 이유다. 그것이 태어날 때 마을의 가축이 떼죽음 당하고, 부모가 세상을 등지는 등의 서사는 오컬트 영화에서 악마의 탄생을 알리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가 절대악이라는 확신은 불교 세계관이 개입하면서 상당 부분 힘을 잃는다. 세상에 절대악은 없으며, 지렁이가 태어나면 그의 천적인 독수리가 태어나는 등의 사례를 통해서다. 급기야 후반부에 가서 그것은 절대악이 아니라는 점이 중반부에 등장하는 한 남성을 통해 확실해진다. 이 정도면 관객은 단순한 반전을 느끼는 게 아니라, 절대악으로 인식하고 있는 그것의 존재를 다시 설정해야 하는 혼란을 느끼게 된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절대자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를 악용해 사익을 취하는 행태는 한국 사이비 종교의 모습을 정면으로 지적했고, 또 절대자에 대한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신도들의 인간적인 고민도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많았다. 하지만 이 질문을 던지기 위해, 결이 다른 불교와 기독교의 세계관을 무리하게 엮으려고 한 점이 부자연스러웠다.


movie_image (1).jpg 진실의 방을 싫어하고 치킨을 잘 튀기는 조선족 스님의 설명으로 영화 전체의 대립각이 모호해졌다.


다수의 독립영화와 최근의 일부 상업영화에서 두각을 드러낸 박정민을 극 전개의 핵심 요소로 둔 점은 좋았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준 사명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냉철함과 나약함, 죄의식, 분노와 좌절 등을 빼어나게 연기했다. 하지만 그의 성격 하나만으로 이야기 전개의 개연성을 모두 '몰빵'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만약 박정민이 분한 '정나한'이 다른 의형제처럼 사명을 실행할 의지가 부족했다면, 혹은 사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살육에 쾌락을 느껴 사이코패스로 전락했다면, 미륵의 존재를 불신한 나머지 미륵을 죽이려고 했다면, 영화는 알 수 없는 미궁으로 빠졌을 것만 같다.


결과적으로 오컬트의 하위 장르인 퇴마 플롯을 신선하게 만들기 위해 불교의 세계관을 덧입혔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한 오컬트 영화의 주된 세계관인 기독교와의 상관성을 좀 더 고려했어야 했을 듯한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뒤.jpg *한줄평=갑자기 분위기 유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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