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이 보여준 현실 속 결혼 제도의 허점
[드라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된 후기입니다.]
블랙미러 시즌5의 시작을 알리는 드라마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는 발전된 기술에 반영된 인간 본성을 어두운 색채로 그린 작품이다. 아내 '테오'와 사랑스러운 아들을 둔 주인공 '대니(앤소니 마키 분)'는 평온한 현실이 만족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단조로운 일상에 지쳐 보인다. 그의 대학 시절 친구 친구 '칼(야히아 압둘 마틴 분)'은 30대 후반에도 10살 연하의 여자 친구를 만날만큼 자유로운 연애 생활을 이어간다.
갈등은 칼이 대니에게 우연히 가상현실 파이 게임인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를 쥐어주면서 일어난다. 여성과 남성 캐릭터로 각각 분한 이 가상현실에서, 칼과 대니는 여성과 남성의 감각 그대로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이들은 자신과 다른 몸을 가진 이 캐릭터로 가상현실에서 싸우지 않고 성관계를 맺은 후, 각각의 파트너인 여자 친구와 테오와의 잠자리에 소원해진다. 이 갈등에서 더 큰 타격을 받은 건 대니 쪽이다. 배우자인 테오가 자신에게 소홀해진 대니에게 큰 상처를 받고, 그에게 서운함을 토로하면서다.
물론 칼과 대니의 성적 이끌림은 현실 세계까지 이어지진 않는다. 두 친구는 현실 세계에서의 주먹다짐으로 서로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 관계임을 확인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연애를 해 왔던 칼과 달리, 대니는 대학 시절부터 이어온 연애로 결혼까지 이뤄낸 만큼 파트너에게 충실한 스타일이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배우지에게 충실한 면에선 대니와 닮아 있는 테오 역시 대니에게 털어놓는다. 육체적 쾌락을 포함한 강렬한 열정이 그립지만 부부는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느냐고. 언뜻 칼이 선물한 게임을 위기에 놓인 듯 하지만, 결국 이 부부 갈등의 원인은 기술 변화에 미치지 못하는 경직된 결혼 제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W.F 오그번은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을 문화가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을 언급했다. 번화가에 VR 게임을 집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건물이 지어지고, 영화 속 풍경을 몸소 겪을 수 있는 4D 영화관이 흥행하는 시대다. 반도체 메모리의 용량이 1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이론은 발표된 지 17년이 지났다. 반면 지금까지 지속돼 왔던 '평생 살아야 하는' 결혼 제도는 최근 들어서야 '졸혼' 등의 개념이 생기면서 변주를 시도하는 수준이다. 인식이 기술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는 세태 속에서, 부부는 개인 간 합의를 통해 나름의 해결책을 찾게 된다. 대니는 그의 생일에 게임에 접속해 칼의 캐릭터와 마음껏 사랑을 나누고, 테오는 한껏 차려입은 복장으로 바에 앉아 매력적인 남성의 이목을 끌며 자유로운 밤을 보내는 식이다.
아직 첫째 아이가 어리고, 두 번째 아이를 갖기 위해 임신을 시도하고 있는 이들 부부가 성급히 졸혼 등 대안을 택하긴 어려웠을 테다. 또 강렬한 감정을 제외하면 서로에 대한 인간적 신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기도 하다. 대니와 테오는 그래서 결혼 생활은 유지하되, 대니의 생일에 서로에게 자유의 시간을 주기로 했다. 대니는 마음껏 온라인 게임 캐릭터와 사랑을 나누고, 테오는 한껏 차려입고 바에 앉아 남성의 시선을 즐기거나 그 이상을 허용하는 식이다. 서로의 합의가 부른 작은 일탈이 더 큰 일탈을 부를지, 평탄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감미료가 될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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