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도 애정의 일부였음을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영화 <하나레이 베이>

by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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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나레이 베이>의 주인공 '사치'에게 그의 가족은 애증의 대상이다. 남편은 아들 '사카시'가 태어난 후에도 마약을 일삼고, 그런 자신을 다그치는 아내에게 손찌검을 한다. 사카시는 옷장에서 아버지의 유품인 워커맨을 꺼내 듣기도 하고, 사치 몰래 집에 또래 여자를 들여 속옷 등의 흔적을 남긴다. 꿈을 좇다 아이가 생겨 부양의 의무를 지닌 사치에게 가족은 지옥과 다름없었다.


그런 사카시가 서핑을 하러 떠난 하와이에서 상어에게 다리를 잃은 채 싸늘한 주검이 됐을 때, 사치는 큰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아들의 손바닥 지문을 간직하라는 권유도 점잖지만 냉정하게 사양한다. 대신 아들을 잃은 그 섬을 원망하지 말아 달라는 현지인의 부탁을 들은 후, 10년 동안 아들이 죽은 해변가를 찾는다.


그가 동요하기 시작한 건 아들 또래의 서퍼들이 해변가에서 외다리 서퍼를 만났다고 했을 때였다. 어딘가 모자라 보이지만 순수한 서퍼들에게 사치가 마음의 문을 연지 얼마 안 돼서였다. 살아있을 리 없는 아들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아들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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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치는 아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지 모른다. 자신의 꿈조차 접고 시작한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고, 그 관계를 유지하게 만든 아들과의 관계도 퍽 친밀하다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죽은 후 '엄마'라는 역할을 의무로만 떠안아 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들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건 거대한 적막이었을 때 그는 그 당혹스러움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적막의 실체는 하와이에서 아들 또래의 서퍼를 만나면서 서서히 드러났으리라.


사랑과 증오의 감정은 소모하는 만큼 마음의 체력을 들여야 한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닌 무관심이다. 증오의 반대말 역시 사랑이 아니라는 점에서 두 감정은 꽤 비슷한 어떤 감정의 이면이다. 하지만 이 양면성을 인정하기 어려울 때 혼란에 빠진다. 싫어하는 누군가의 모습이 실은 자신을 닮아 있거나, 이별을 통보한 연인이 자신 때문에 불행하기를 바라는 심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양가적인 이 두 감정은 대상에 대한 하나의 감정으로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차분해진다. 냉랭하던 사치가 10여 년 후 아들의 손바닥 지문을 받아 든 채 오열한 후에야, 미소를 띨 수 있게 된 배경이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다가, 우연한 계기로 마주해 터트리는 사치의 모습이 나와 비슷해 보였다. 상실을 다룬 영화인데도 슬픔이나 절망을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아 영화가 끝난 후에도 감정 소모가 덜했다. 화면이 자주 보여주는 선명하고 탁 트인 해변의 풍경은 영화 속 등장인물의 말대로 인간의 죽음 역시 대자연의 일부일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을 안겨줬다. 다만 10년을 넘나드는 시간 동안 주인공의 외모가 달라지지 않은 않은 점, 하와이 현지의 영어 억양이 일본 관객을 의식한 듯 한국 관객에게 어색하게 들리는 점은 다소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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