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미러 시즌5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레이철, 잭, 애슐리 too>에서 10대 소녀는 인공지능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거나, 원하는 대상과 가까워진다. 엄마를 잃고 의기소침해 있는 10대 소녀 레이철에게 하이틴 스타 애슐리는 선망의 대상이다. 매사에 까칠하지만 동생 레이철을 아끼는 잭은 아버지에게 귀띔해 애슐리의 인공지능 로봇 '애슐리 too'를 사들이게 하지만, 긍정적인 애슐리 too와 달리 고모를 매니저로 둔 애슐리는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 음원 수익을 위해 자신을 통제하는 고모 탓에 애슐리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어두운 분위기의 음악을 자유롭게 만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슐리의 매니저가 그의 말을 듣지 않는 애슐리를 의식 불명 상태로 만들자, 이 소식을 접한 인공지능 로봇은 잭/레이철 자매와 함께 애슐리를 구출하는 작전을 펼친다. 애슐리는 자매의 도움을 받아 의식 불명 상태에서 깨어나 자신의 뇌파 속 음악으로 유작을 발표하려던 고모의 공식 행사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자신의 거친 음악성을 통제해온 고모를 벗어나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잭과 레이철은 각각 애슐리의 기타리스트와 매니저로 거듭나게 된다. 엄마를 잃은 후 다소 멀어졌던 자매가 화해하고, 자신이 선망하던 스타와 팬이 '절친' 수준으로 가까워지게 된 배경이다.
블랙미러가 미래의 첨단 기술이 인간 삶이 미칠 영향력을 어두운 상상력으로 풀어냈다고 하지만, 나는 이번 에피소드에서 다소 밝은 기운을 느끼기도 했다. 인간에게 10대는 흔히 말하듯 질풍노도의 시기이며, 다소 과잉된 형태일지언정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거나 추구하게 되는 시기다. 누구나 기억 속에만 간직하고 있을 법한 '중2병'스러운 모습이 있을 터인데, 드라마 속 10대 소녀의 일탈은 시각에 따라 사랑스럽게 보일 여지가 많아 보였다. 특히 인공지능 로봇이 자신의 숙주라고 할 수 있는 인간 애슐리를 찾는 과정에서, 이들 소녀의 활약은그들만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다 큰 어른이 대다수인 블랙미러의 시청자가 보기에 다소 낯간지러운 장면도 적지 않지만.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인공지능 로봇이 자신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 애슐리의 죽음을 바랐다는 점이다. 애슐리가 고모에게 휘둘리느니 죽는 게 낫다는 이유 때문인데, 인간의 자유의지조차 AI에게 복제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인간인 우리는 자유의자를 추구하려다가도 크고 작은 수익 앞에 쉽게 고개를 숙이게 되지 않던가.
첨단 기술이 인간 삶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그린 게 '블랙미러'의 모토이지만, 정작 이번 에피소드에서 어두운 측면이 도드라진 건 애슐리 매니저의 탐욕이었다. 그의 탐욕은 애슐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지 못하게 막고 애슐리를 상업의 틀 안에 가두는 결과를 낳았다. 인간의 탐욕은 기술발전과 무관하게 인류가 존재해온 모든 시간을 통틀어 갈등을 일으켜온 원인이기도 했다. '착한 AI'를 그린 많은 작품이 말하듯 이 드라마도 타인을 망가뜨리는 인간과, 타인을 돕는 AI의 대립구도 중 후자에 손을 들어줌으로써 기술 발전을 조심스럽게 긍정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